미국 통신기업 AT&T, 멕시코 진출 11년 만에 철수…텔레비사에 20억 달러 매각

미국의 대형 통신기업 AT&T가 멕시코 시장에 진출한 지 약 11년 만에 현지 이동통신 사업을 전면 매각하기로 했다. 멕시코 방송·통신기업 그루포 텔레비사(Grupo Televisa)와 투자회사 핀테크 홀딩스(Fintech Holdings)는 AT&T의 멕시코 이동통신 사업을 20억 달러에 인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대금은 보유 현금과 차입금을 통해 조달하며, 거래는 관계 당국의 승인 등 필요한 절차를 거쳐 2027년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번 매각은 멕시코 통신시장의 경쟁 구조와 외국 통신기업의 사업전략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AT&T가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멕시코 2위 이동통신 사업자로 성장했음에도 시장에서 철수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AT&T는 2015년 멕시코 이동통신회사 이우사셀(Iusacell)을 약 25억 달러에 인수하고, 이어 넥스텔 멕시코(Nextel México)를 약 18억7,500만 달러에 인수하면서 멕시코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당시 멕시코 정부는 통신시장 개방과 경쟁 촉진을 추진하고 있었으며, AT&T는 이를 중남미 시장 확대의 중요한 기회로 판단했다. 두 회사의 인수에 투입한 자금만 약 44억 달러에 달했다.
이후 AT&T는 기존 통신망을 통합하고 4G LTE와 5G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등 전국적인 통신 인프라 구축에 상당한 자금을 투자했다. 이를 바탕으로 가입자 약 2,470만 명을 확보하며 카를로스 슬림이 소유한 아메리카 모빌의 텔셀(Telcel)에 이어 멕시코 2위 이동통신 사업자로 성장했다.
그러나 가입자 확대가 반드시 높은 수익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멕시코 이동통신시장은 텔셀이 약 58%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AT&T는 약 16%, 스페인의 모비스타(Movistar)는 약 14% 수준에 머물러 있다.
AT&T는 통신 품질과 요금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확대했지만, 텔셀이 오랫동안 구축한 전국적인 통신망과 고객 기반을 따라잡는 데 한계가 있었다. 특히 지방도시와 농촌지역에서는 텔셀의 통신망이 상대적으로 넓어 경쟁업체들이 가입자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수익성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AT&T 멕시코의 2025년 매출은 약 854억 페소였지만 영업이익은 약 14억 페소에 그쳐 영업이익률이 1.6% 수준에 머물렀다. 막대한 통신망 투자와 유지관리 비용, 주파수 사용료 등이 수익성을 압박한 주요 요인으로 분석된다.
멕시코 통신시장의 특성도 외국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멕시코는 선불 충전방식의 휴대전화 이용자가 많아 가입자당 평균 매출이 미국보다 낮은 편이다. 통신사업자는 전국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시설에 투자해야 하지만, 가입자에게 높은 요금을 부과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멕시코 정부가 부과하는 높은 주파수 사용료도 통신업계의 오랜 불만 가운데 하나다. 통신사업자들은 주파수 사용에 따른 비용 부담이 통신망 확충과 신규 투자에 장애가 된다고 주장해 왔다.
AT&T 본사의 경영전략 변화 역시 이번 매각의 중요한 배경이다. 회사는 앞으로 미국 내 광섬유 인터넷과 5G 통신망 확대에 투자를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미국 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고 통신 인프라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멕시코 사업을 계속 운영하는 것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AT&T가 2015년 두 회사를 인수하는 데 약 44억 달러를 지출했지만 이번 매각가격은 20억 달러에 불과하다. 다만 단순히 인수금액과 매각금액의 차이를 전체 손실로 볼 수는 없다. 지난 11년 동안 발생한 영업수익과 추가 투자비, 차입금 및 기타 자산가치 등을 함께 고려해야 정확한 투자 성과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 통신기업의 멕시코 사업 철수는 AT&T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스페인의 대형 통신기업 텔레포니카(Telefónica)도 모비스타 멕시코 사업을 매각하는 방향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모비스타 역시 약 2천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했지만, 텔셀과의 경쟁과 지속적인 통신망 투자 부담으로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처럼 미국과 스페인의 주요 통신기업이 멕시코 사업을 정리하는 움직임은 시장의 성장 가능성과 별개로 외국기업의 수익성 확보가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AT&T를 인수하는 텔레비사는 새로운 성장 기회를 확보하게 됐다. 텔레비사는 현재 이지(Izzi)를 통해 케이블TV와 유선 인터넷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AT&T의 이동통신망을 확보하면 유선 인터넷과 휴대전화, 방송서비스를 결합한 종합 통신상품을 제공할 수 있다.
이는 기존 유선통신 고객에게 이동통신 서비스를 함께 판매하고, 반대로 AT&T 가입자에게 가정용 인터넷과 방송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공동 인수자인 핀테크 홀딩스는 멕시코 사업가 다비드 마르티네스(David Martínez)가 이끄는 투자회사로, 금융투자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인수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거래가 완료되면 멕시코 통신시장은 카를로스 슬림의 텔셀과 텔레비사가 인수하는 AT&T를 중심으로 새로운 경쟁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인터넷과 이동통신을 결합한 할인상품이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그러나 통신시장의 사업자 수가 줄어들거나 특정 기업에 시장 지배력이 집중될 경우 장기적으로 요금 경쟁이 약화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AT&T 멕시코의 기존 가입자들은 정상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이번 인수 계약만으로 전화번호나 요금제가 즉시 변경되는 것은 아니다. 향후 브랜드 유지 여부와 서비스 개편 방안은 거래 완료 이후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AT&T의 멕시코 철수는 외국 통신기업이 거대한 내수시장에서 가입자를 확대하더라도 반드시 높은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반면 텔레비사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전국적인 이동통신망과 대규모 가입자 기반을 확보할 기회를 얻었다.
결국 이번 거래의 성패는 새로운 경영진이 기존 통신망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텔셀과의 경쟁에서 얼마나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또한 멕시코 정부가 통신시장 경쟁을 촉진하고 투자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할지도 향후 시장 재편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