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광 하나가 만든 도시…치와와 '바토필라스' 의 50년 광산 이야기
- 멕시코 한인신문
- 7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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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와와주 시에라 타라우마라(Sierra Tarahumara) 깊숙한 협곡 아래 자리한 바토필라스(Batopilas)는 오늘날 인구가 많지 않은 조용한 ‘푸에블로 마히코(Pueblo Mágico)’지만, 한때는 세계적인 은 생산지로 이름을 날렸던 곳이다. 멕시코 관광당국에 따르면 이 지역의 은광 개발은 1700년대 초 시작됐으며, 전성기에는 인구가 1만명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다.
바토필라스(Batopilas)의 은광은 보통 광석 속에 소량 포함된 은을 정제하는 형태와 달랐다.
이곳에서는 자연 상태에 가까운 순은(native silver)이 대량으로 발견됐다. 지질학계는 바토필라스 광구에서 16세기 이후 20세기 초까지 생산된 은을 약 3억 트로이온스로 추정한다. 지금의 단위로 환산하면 9천톤이 넘는 엄청난 규모다.
19세기 후반 바토필라스의 운명을 바꾼 인물은 미국 워싱턴DC 시장을 지낸 사업가 알렉산더 로비 셰퍼드(Alexander Robey Shepherd)였다. 그는 1880년대 이 지역 광산에 대규모 자본과 현대적인 채굴기술을 들여왔고, Batopilas Mining Company를 통해 광산을 산업화했다. 미국 자본이 멕시코 북부 광산산업에 본격 진출하던 시기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1861년부터 멕시코혁명 전까지 이 회사는 막대한 경제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당시 바토필라스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모험이었다. 지금처럼 포장도로가 없었기 때문에 치와와 고원에서 협곡 아래까지 말과 노새를 이용해 이동해야 했다. 급경사를 따라 내려가는 길에는 하루 이동거리마다 사람과 동물을 쉬게 하는 시설이 마련돼 있었다. 은괴 역시 노새 등에 실려 수십㎞를 이동한 뒤 치와와의 조폐시설 등으로 운반됐다. 당시 운반된 은괴 하나의 무게가 약 35㎏이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광산의 막대한 수익은 외딴 산골마을의 생활도 완전히 바꿨다. 셰퍼드는 발전설비와 각종 기계시설을 도입했고, 바토필라스는 멕시코에서 매우 이른 시기에 전기를 사용한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됐다. 멕시코 관광당국은 바토필라스가 멕시코시티 다음으로 전기를 공급받은 지역이었다고 소개한다.
광산을 중심으로 대저택과 상점, 행정시설이 생겨나면서 협곡 한가운데에 당시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현대화된 도시가 형성됐다. 1892년 미국 자연사박물관 탐사대가 촬영한 사진에는 산비탈을 따라 주택과 광산시설, 높은 굴뚝들이 빼곡하게 자리한 당시 바토필라스의 모습이 남아 있다. 현재의 작은 산골마을과 비교하면 과거 광산도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은광의 번영은 영원하지 않았다. 멕시코혁명과 국제 은 가격 변화, 광산 생산성 저하 등이 겹치면서 20세기 초 광산산업이 급격히 쇠퇴했다. 대규모 채굴이 중단되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빠져나갔고, 한때 수천~1만명에 달하던 인구는 크게 줄었다. 오늘날 마을 중심부 인구는 전성기의 일부에 불과하다.
바토필라스가 다시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관광 때문이다. 이곳은 세계적인 협곡지대인 코퍼캐니언(Barrancas del Cobre) 깊숙한 곳에 자리한다. 크릴(Creel)에서 자동차로 약 3시간 동안 산악도로를 내려가야 하며, 일부 전망대에서는 협곡 깊이가 1,700m 이상에 이른다. 2012년에는 멕시코 정부의 푸에블로 마히코로 지정됐다.
지금도 마을 곳곳에는 과거 은광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18~19세기에 지어진 대저택과 아시엔다(hacienda), 광산시설의 폐허, 오래된 교회 등이 당시의 부를 보여준다. 특히 셰퍼드와 광산 경영진이 사용했던 건물들은 “왜 이런 깊은 협곡에 이 정도 규모의 건축물이 들어섰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할 만큼 화려했던 시절을 증명한다.
바토필라스의 역사는 단순한 ‘옛 은광 이야기’만은 아니다.
19세기 후반 미국 자본과 유럽 자금, 멕시코 노동력, 그리고 라라무리(Rarámuri) 원주민 지역이 하나의 세계적인 광업경제로 연결된 장소였다. 광산에서 캐낸 은은 치와와를 거쳐 국제시장으로 나갔고, 그 돈으로 당시 최첨단 기계와 발전시설이 다시 이 깊은 협곡으로 들어왔다.
지금 바토필라스를 찾는 관광객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화려한 은광의 흔적과 현재의 고요함 사이의 대비다. 한때 세계에서 손꼽히는 은광이 있던 도시가 광산 폐쇄 이후 다시 인구 1천명 남짓의 산골마을로 돌아간 것이다.
바토필라스의 50여 년에 걸친 산업 전성기는 은 하나가 얼마나 빠르게 도시를 만들고, 그 자원이 사라졌을 때 얼마나 급격하게 도시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멕시코 광산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