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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대표 독립출판사 '에라', 66년 만에 사실상 활동 중단



멕시코 현대문학의 한 시대를 함께해온 대표적인 독립출판사 에디시오네스 에라(Ediciones Era)​가 창립 66년 만에 운영을 최소화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변한 출판시장과 서점 유통망의 붕괴로 기존 방식의 출판사업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코로나 이후 서점 유통망 붕괴·판매량 75% 급감… 멕시코 문학사 한 축을 지켜온 출판사의 위기


에라(Era)는 지난 17일 고객과 서점 등에 보낸 서한을 통해 활동 중단과 거래처 정리에 나선다는 뜻을 밝히면서 사실상 폐업 수순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후 공식 성명을 다시 발표해 “에라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운영을 최소한으로 축소하는 것”이라고 바로잡았다. 66년 동안 구축해온 출판 목록과 책들은 계속 남아 독자들과 만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라는 성명에서 팬데믹 이후 멕시코의 책 생태계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책을 판매하고 구매하고 읽는 방식이 변했으며, 수십 년 동안 출판사를 지탱했던 기존 서점과 유통 구조도 크게 약화됐다는 것이다.


특히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판매량이 약 25% 수준으로 떨어진 것, 다시 말해 판매가 약 75% 감소한 것이 결정적인 타격이었다. 에라는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시도했지만 기존 출판 모델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균형이 결국 무너졌다고 밝혔다.


에라는 1960년 멕시코시티에서 젊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설립됐다. 출판사 이름 ‘ERA’ 역시 창립에 참여한 Espresate(에스프레사테), Rojo(로호), Azorín(아소린)​의 성에서 따온 것이다. 창립자 가운데 한 명인 비센테 로호(Vicente Rojo)는 멕시코 현대 그래픽 디자인을 대표하는 예술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에라의 66년 역사는 사실상 멕시코 현대문학과 지성사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세 에밀리오 파체코(José Emilio Pacheco), 카를로스 몬시바이스(Carlos Monsiváis),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Elena Poniatowska), 호세 레부엘타스(José Revueltas), 카를로스 푸엔테스(Carlos Fuentes),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 후안 룰포(Juan Rulfo), 세르히오 피톨(Sergio Pitol) 등 멕시코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에라의 이름으로 독자들과 만났다.


소설과 시뿐 아니라 에세이, 사회비평, 역사, 정치, 예술, 어린이·청소년 도서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를 출간했으며, 500종이 넘는 출판 목록을 구축했다. 거대 자본의 상업 출판사와는 달리 문학성과 사회적 문제의식을 중시하는 독립출판사의 정체성을 유지해왔다는 점에서 멕시코 문화계에서 차지하는 상징성도 컸다.


특히 에라는 멕시코 현대사의 격동기를 기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의 대표작 《틀라텔롤코의 밤(La noche de Tlatelolco)》​을 비롯해 정치·사회 현실을 정면으로 다룬 수많은 작품을 출판하면서 단순한 출판사를 넘어 멕시코 지식인 사회의 중요한 문화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사태가 멕시코 문화계에 던지는 충격이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출판사의 경영난을 넘어, 독립출판사가 좋은 책의 판매만으로 생존하기 어려워진 멕시코 출판시장의 구조적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논란이 커지자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도 직접 입장을 밝혔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20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출판사가 문을 닫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니다”라며 클라우디아 쿠리엘 문화부 장관에게 에라 측과 접촉해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 수 있는지 검토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에라는 앞으로 수개월 동안 서점과 도서전 등을 통해 보유 도서를 판매할 예정이다. 초기 출판물 가운데 희귀 자료들도 선보일 계획이며, 멕시코시티 소칼로에서 열리는 도서전에도 참가한다.


출판사는 마지막 성명에서 66년에 걸친 역사가 단순히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출판사의 규모와 활동은 크게 축소되더라도 그동안 펴낸 책들은 도서관과 독자들의 손에 남아 새로운 세대에게 계속 읽힐 것이라는 것이다.


66년 동안 멕시코의 작가와 독자를 이어온 에라의 위기는 종이책 한 권의 판매 감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좋은 책을 만들고 그것을 판매하는 것만으로 독립출판사가 존립할 수 있었던 시대가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음이기 때문이다. 멕시코 문화계가 에라의 향후 행보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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