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3부) 장관보다 오래 살아남는 직원들…멕시코 공무원의 '진짜 계급사회'

멕시코의 한 정부청사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일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한 사람은 직급도 높고 월급도 많으며 중요한 정책결정에 참여한다. 다른 사람은 상대적으로 낮은 직급에서 행정업무를 담당한다. 겉으로 보면 첫 번째 사람이 훨씬 좋은 직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Base는 대통령이 바뀌어도 남고 Confianza는 정권과 운명 함께하기도…‘Sexenio’가 만드는 멕시코 관료사회의 생존법
그러나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순간 두 사람의 처지는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 관리직 직원은 새 장관이 임명되고 조직이 개편되면서 자리를 떠나야 할 수 있지만 다른 직원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음 날 같은 책상으로 출근한다.
멕시코 공직사회를 이해하는 핵심인 Personal de Base와 Personal de Confianza의 차이다.
Base 직원은 법률과 단체협약, 노조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강한 고용보호를 받는다. 정식 Base 자리를 확보하면 대통령이나 장관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직장을 잃지 않는다.
반면 Confianza는 관리·감독, 정책결정, 기밀업무 등과 관련된 직위가 많다. 특히 조직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정치적 신뢰와 정부교체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래서 멕시코 공직사회에서는 월급과 직급이 높은 관리직보다 상대적으로 급여가 낮은 Base 자리를 부러워하는 역설이 나타나기도 한다.
관리자는 더 많은 권한과 보수를 받을 수 있지만 Base 직원은 여러 대통령과 장관을 거쳐 정년까지 같은 기관에서 일할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멕시코에서는 높은 자리로 올라간다고 반드시 직장이 더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구조를 더욱 극적으로 만드는 것이 대통령의 6년 임기, 세세니오(Sexenio)다.
멕시코 대통령은 6년 단임제다. 대통령이 바뀌면 장관과 차관이 교체되고 주요 정책라인과 조직이 연쇄적으로 재편된다. 새 정부가 이전 정부의 핵심 정책을 폐기하면 관련 조직이 축소될 수도 있고 부처가 통폐합되거나 기능이 다른 기관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임명 성격이 강한 고위직과 일부 Confianza 직원은 상당한 인사 위험에 노출된다.
정권교체 때 관리직의 40~60%가 해고된다는 식의 구체적인 전국 비율을 뒷받침할 공식 통계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직급이 높고 정책결정권에 가까울수록 Sexenio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은 멕시코 관료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반대로 여러 정권에서 살아남는 전문관료들도 존재한다. 이들에게 가장 강력한 생존수단은 특정 정치인과의 관계만이 아니다. 세금, 예산, 국제통상, 외교, 통계, 금융, 에너지처럼 정부가 바뀌어도 필요한 전문성을 가진 관료는 새로운 정부에서도 필요하다.
결국 멕시코 전문관료에게 행정능력은 동시에 정치적 생존능력이 된다. 이 때문에 멕시코 공직사회를 단순한 하나의 피라미드로 설명하기 어렵다. 공직에는 두 개의 축이 존재한다.
하나는 급여와 권한이고 다른 하나는 고용안정성이다. 높은 급여와 큰 권한을 가진 사람이 반드시 가장 안정적인 사람이 아니며 낮은 직급의 Base 직원이 오히려 장관보다 오래 정부청사에 남을 수 있다.
기관별 차이도 크다.
Banco de México와 INEGI 같은 기관, SAT와 같은 전문기관, 연방 중앙부처, 사법부, 외교관 조직, 주정부와 지방정부는 서로 다른 조직문화와 경력구조를 갖는다. CFE와 PEMEX 역시 일반 연방부처와 동일하게 볼 수 없다. 이들 국영 에너지기업에는 강력한 노조와 별도의 단체협약, 노동관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멕시코에서 가장 좋은 공무원 직장’을 하나로 정하기는 어렵다.
경제·금융 전문가에게는 Banco de México의 전문성이 중요할 수 있고 세무·회계 전문가에게는 SAT에서 쌓는 경력이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높은 직급보다 강력한 고용안정성을 가진 Base 자리가 훨씬 매력적일 수도 있다.
2018년 이후 강화된 Austeridad Republicana, 이른바 공화국 긴축정책은 특히 고위 공직의 매력을 변화시켰다. 정부는 고위 공직자에게 제공되던 각종 부가혜택과 행정비용을 줄이고 공직보수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이 때문에 금융과 IT, 법률, 컨설팅, 에너지 등 민간시장에서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전문인력에게 공직이 반드시 경제적으로 최고의 선택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멕시코에서 공직의 인기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비공식 노동이 절반을 넘는 사회에서 정부가 제공하는 정기적인 급여와 사회보험, 의료, 퇴직제도, 주택금융은 민간 노동시장의 상당수 일자리에서는 쉽게 얻기 어려운 안정성을 제공받기 때문이다.
멕시코 공직의 진짜 특권은 높은 월급보다 ‘예측 가능한 삶’에 있다.
그러나 그 예측 가능성조차 모든 공공부문 근로자에게 동일하게 제공되지 않는다.
600만 개가 넘는 공공부문 일자리 안에는 여러 정권을 거쳐 정년까지 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통령 임기와 함께 자신의 경력도 끝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공개경쟁을 거쳐 전문성을 쌓는 경력관료가 있고 정치적 신임을 기반으로 임명되는 고위직도 있다. 그 사이에는 임시직과 계약직, 프로젝트 인력도 존재한다. 멕시코 공직사회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Palanca’, 즉 인맥과 연줄의 문제도 이 구조와 맞닿아 있다.
2003년 도입된 Servicio Profesional de Carrera는 정치적 추천의 영향력을 줄이고 능력과 실적에 기반한 전문관료제를 만들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멕시코 관료제가 풀어야 할 근본적인 문제는 남아 있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부가 자신의 정책을 수행할 사람을 선택할 권리와 대통령이 바뀌어도 국가행정을 지속해야 하는 전문관료제의 독립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다.
한국에서 ‘공무원’이라는 단어는 시험과 정년, 안정성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멕시코에서는 다르다. 어느 기관에 들어갔는지, Base인지 Confianza인지, 전문경력직인지 정치적 임명직인지, 어떤 노동법과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는지, 노조의 보호를 받는지에 따라 같은 정부 명함을 가진 사람들의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서 멕시코 공직을 ‘신이 내린 직장’이라고 부르는 것도 절반만 맞고 ‘6년짜리 직장’이라고 부르는 것도 절반만 맞는다. 한쪽에는 대통령이 몇 번 바뀌어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른 한쪽에는 더 높은 급여와 권한을 가진 대신 6년마다 정치적 생존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수많은 전문관료가 경력과 시험, 경쟁과 전문성을 무기로 살아남는다.
공공부문 유급 일자리 603만 개. 밖에서 보면 국가가 보장하는 거대한 안정의 세계다.
그러나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멕시코 사회의 정치와 계층, 노동시장과 인맥, 능력주의와 정권교체가 모두 압축돼 있다.
멕시코 공무원의 세계는 하나의 ‘철밥통’이 아니다. 서로 다른 안정성과 위험을 가진 수백만 개의 자리들이 모여 있는 또 하나의 멕시코 사회일 뿐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