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보레온, 멕시코 최대 '한국기업 거점' 부상…한국, 멕시코와 무관세 교역 확대 모색

멕시코 북부 누에보레온주가 한국 기업들의 멕시코 진출을 대표하는 최대 산업거점으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기아자동차를 중심으로 현대모비스와 현대위아를 비롯한 자동차·부품·전자·첨단기술 기업들이 대거 집결하면서 몬테레이와 페스케리아, 아포다카 일대에는 300개에 가까운 한국 기업과 수천 명의 한국인이 생활하는 대규모 산업 생태계가 형성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과 멕시코 정부가 양국 통상관계를 다시 조정하기 위한 협의에 나서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멕시코가 올해 한국을 포함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서 수입되는 상당수 제품의 관세를 인상한 데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인 USMCA(T-MEC) 재검토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한국 기업들에는 멕시코와의 안정적인 무역·투자 환경 확보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멕시코 경제부 자료를 인용한 현지 보도에 따르면 2024년부터 2026년 상반기까지 멕시코에 유입된 한국의 외국인직접투자 가운데 47.1%가 누에보레온에 집중됐다. 이 기간 누에보레온이 유치한 한국 자본은 32억240만 달러에 달했다. 멕시코시티의 18억8,280만 달러와 바하칼리포르니아의 7억5,070만 달러를 크게 앞서는 규모다.
한국 기업의 숫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누에보레온 주정부는 올해 4월 기준 주내 한국 기업을 281개로 집계했으며, 이후 주정부는 300개 이상의 한국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동차와 자동차부품뿐 아니라 철강, 전자, 정보기술, 소비재 등으로 투자 분야도 확대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누에보레온 진출을 본격화한 상징적인 기업은 기아다. 기아는 2016년 페스케리아 공장에서 자동차 생산을 시작한 뒤 2024년 8월 누적 생산 200만 대를 돌파했다. 현재 이곳에서는 K3와 K4 등을 생산하며 멕시코 국내시장뿐 아니라 북미와 세계 각국으로 공급하고 있다.
기아의 대규모 투자는 한국 부품업체들의 동반 진출로 이어졌다. 현대모비스는 페스케리아에서 섀시와 제동장치, 에어백, 램프, 전자부품과 배터리 시스템 등을 생산하고 있다. 2025년 말까지 누에보레온 누적 투자액은 6억9,500만 달러에 달했으며 4천 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했다. 올해에는 자율주행과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에 추가로 약 5천만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주정부가 밝혔다.
한국 기업들이 누에보레온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미국과의 지리적 접근성과 북미 공급망이다. 누에보레온에서 미국 텍사스 국경까지 육로 운송이 가능하고, 멕시코에서 생산된 제품이 USMCA의 원산지 규정을 충족할 경우 미국과 캐나다 시장에 특혜관세로 수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멕시코 정부에 따르면 미국으로 향하는 멕시코 수출품의 약 85%가 무관세 혜택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완제품을 미국으로 직접 수출하는 것과 달리 멕시코에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현지 및 북미산 부품 사용 비율 등 USMCA 원산지 요건을 충족하면 북미 공급망 내부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멕시코에 공장을 세웠다고 자동으로 미국 무관세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며 USMCA가 정한 원산지 규정을 충족해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USMCA 재검토에서도 자동차와 산업제품의 원산지 규정이 핵심 협상의 하나로 다뤄지고 있다.
그러나 올해부터 새로운 문제가 등장했다. 멕시코가 한국을 비롯해 멕시코와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서 들어오는 1,400개 이상의 품목에 5~50%의 관세를 부과 또는 인상했기 때문이다. 자동차부품과 전자제품, 가전제품 등 한국 기업과 밀접한 품목도 포함되면서 한국에서 멕시코 공장으로 부품과 소재를 가져오는 비용이 높아졌다.
결국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나갈 때’뿐 아니라 ‘한국에서 멕시코로 들어올 때’의 관세 문제가 동시에 중요해진 셈이다. 현지 생산을 확대하려 해도 핵심 부품과 장비를 한국에서 가져오는 과정에서 높은 관세가 부과되면 멕시코 생산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멕시코와의 자유무역 환경을 개선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국 산업통상 당국은 지난 4월 멕시코 측과 만나 한·멕시코 FTA가 양국 교역과 투자를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중단된 협상을 조속히 재개하기 위한 고위급 협의를 계속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 자료에 따르면 양국 FTA 협상은 2022년 재개에 합의했지만 이후 다시 중단된 상태다.
멕시코 정부의 입장은 조금 더 신중하다. 양국 경제장관은 지난 5월 멕시코시티에서 만나 공식적인 무역·투자 협력체계의 필요성에는 합의했지만 당장 FTA 협상을 공식 재개한다고 발표하지는 않았다. 대신 장관급 ‘전략대화’와 양국 통상관계를 현대화하기 위한 실무그룹을 설치하고, 멕시코의 관세 인상이 한국 기업의 무역과 투자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협의를 강화하기로 했다.
따라서 현재 한국이 추진하는 ‘무관세 접근’은 이미 한·멕시코 FTA가 체결됐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국은 멕시코의 관세장벽을 낮출 수 있는 새로운 통상 틀을 원하고 있고, 멕시코는 전략대화와 실무협의를 통해 관계를 재조정하는 단계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멕시코 외교부에 따르면 현재 멕시코에는 2천 개가 넘는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는데 교역과 투자를 확대하고 경제협력을 강화하기로 양국 정상 간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누에보레온은 이러한 한·멕시코 경제관계의 중심에 있다. 한국 명예영사 측 추산에 따르면 몬테레이 광역권에는 약 5천 명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페스케리아와 아포다카, 몬테레이에 특히 집중돼 있다. 한국 기업과 교민 증가로 일부 지역에서는 한국어 안내판을 설치한 슈퍼마켓과 한식당, 한국 식품점 등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생활권까지 변화하고 있다.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지난 2월 몬테레이 사무소를 다시 개설한 것도 이러한 변화를 보여준다. 누에보레온 주정부는 KOTRA 사무소가 신규 한국 투자 유치와 양국 교역 확대,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관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에서 멕시코로 들어오는 부품과 장비에 대한 관세 부담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이고, 다른 하나는 멕시코에서 생산된 한국 기업 제품이 강화될 가능성이 있는 USMCA 원산지 규정을 계속 충족해 미국시장에 경쟁력 있게 진출할 수 있느냐다.
특히 미국과 멕시코는 현재 USMCA 재검토 과정에서 아시아산 수입 의존 축소와 북미 역내 공급망 강화를 논의하고 있다. 멕시코 정부도 미국산 수입을 확대하고 다른 국가로부터의 수입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한국 기업에는 새로운 변수다.
결국 누에보레온에 형성된 ‘한국 산업벨트’의 미래는 단순히 투자 규모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산 부품을 가져와 멕시코에서 조립하는 기존 생산방식에서 벗어나 멕시코 현지 부품 조달과 기술이전, 북미산 부품 비중을 얼마나 확대하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
누에보레온은 이제 한국 기업들이 멕시코시장만을 겨냥해 진출하는 지역이 아니라 미국·캐나다까지 연결하는 북미 생산기지로 변모했다. 한·멕시코 간 관세장벽 완화와 USMCA 재검토 결과에 따라 페스케리아와 아포다카를 중심으로 형성된 한국 기업 생태계의 투자전략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