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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멕시코 한인신문

멕시코인들의 자부심인 전쟁사의 큰 족적 'Cinco de Mayo'를 아시나요?

최종 수정일: 2023년 5월 3일


프랑스 침략에 맞서 싸운 멕시코軍. 당시 전투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최근 멕시코 아보카도 수출업체가 미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22%만이 'Cinco de Mayo' 의 진정한 역사를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멕시코계 미국인에게는 'Cinco de Mayo' 가 멕시코 유산을 기념하는 날이다.

멕시코인이 아니거나 멕시코의 독립기념일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데킬라를 마시고 guacamole와 칩을 즐기는 날로 알고 있다.


하지만 1862년 5월 5일은 멕시코와 미국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날이다.

싱코 데 마요(Cinco de Mayo)는 '5월5일'이라는 의미로 1862년 멕시코 중부도시 Puebla에서 프랑스군과 멕시코군간에 전투가 벌어졌는데 여기에서 멕시코 군대는 수적 열세와 화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정예군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위해 제정된 날이다.


당시로 잠시 거슬러 올라가보면, 1861년 베니토 후아레스 멕시코 대통령 정부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멕시코-미국 전쟁(1846~48)과 멕시코 국내 개혁 전쟁(1858~61)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원하는 자유주의자들, 이에 반해 정부와 가톨릭 교회 사이의 긴밀한 결속을 원하는 보수층 사이의 전쟁으로 국가는 거의 파산 직전이었다.


1862년 푸에블라 전투에서 멕시코군은 수적 열세와 화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정예 군대를 물리쳤다. 깃발을 들고 있는 인물은 당시 멕시코 대통령 베니토 후아레스다.



결국, 멕시코 정부는 국고의 재정적 부담으로 인해 영국, 스페인, 프랑스에 진 모든 대외 채무에 대한 지불 유예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에 대해 세 나라는 런던에서 만나 상환을 강제하기 위해 멕시코에 해군 함정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1861년 12월 베라크루즈(Veracruz)에 상륙한 영국과 스페인 군대는 배상 계획을 재협상하고 평화적으로 철수했지만 프랑스 나폴레옹 3세 황제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군대는 베라크루스를 공격한 후 멕시코시티를 향해 진군했다.


나폴레옹 3세는 멕시코에 제2차 멕시코 제국으로 알려진 이 지역에서 프랑스의 이익을 위해 제국을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 1821년에 설립된 멕시코 제1제국은 아우구스틴 데 이투르비데 황제에 의해 통치되었습니다. 그는 1823년 2월에 왕위를 포기하고 유럽으로 도망쳤다.


나폴레옹 3세는 스페인의 식민지로 '제2 멕시코 제국'으로 알려진 멕시코를 프랑스 통치하에 두는 제국을 건설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1821년에 세워진 제1 멕시코 제국은 아우구스틴 데 이투르비데(Augustín de Iturbide) 황제가 통치했는데 그는 1823년 2월에 왕위에서 쫓겨나 유럽으로 망명했다.


나폴레옹 3세.

라틴 아메리카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고 멕시코의 상품과 시장에 대한 프랑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멕시코를 침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나폴레옹은 멕시코에 프랑스에 우호적인 군주제를 세우는 제국의 꿈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나폴레옹 3세는 멕시코와 라틴 아메리카 시장에 접근하고 미국에 대항하여 이 지역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을 확대하기를 원했다.


1862년 5월 5일, 6,000~8,000명의 프랑스 군대가 푸에블라(Puebla ) 시에 있는 멕시코의 로레토(Loreto) 요새와 과달루페(Guadalupe) 요새에 도착했을 때 4,000명의 장비가 열악한 멕시코 군대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이그나시오 사라고사( Ignacio Zaragoza) 장군이 이끄는 메스티소(Mestizo백인과 원주민 혼혈 )와 사포텍(Zapotec 원주민 부족) 병사들은 하루 동안의 전투에서 50년 동안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던, 당시로서는 세계 최강의 군대로 평가받던 프랑스군을 상대로 1,000여명을 사살하며 대승을 거두었다.

결국, 프랑스軍은 프랑스에서 지원군이 오기를 기다리며 후퇴했다.


이전쟁, 즉 푸에블라 승전을 기념하여 생긴게 바로 'Cinco de Mayo'다.


멕시코의 푸에블라 전투 승리는 전쟁을 종식시키지는 못했지만 멕시코 국민에게 큰 자부심과 국가적 단결심을 심어주었다. 푸에블라 전투는 곧 외국 지배에 대한 멕시코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1년 후 프랑스에서 지원군과 3만 명의 군인이 도착했다.

프랑스군은 1863년 멕시코시티의 수도를 점령했고, 결국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Habsburg) 귀족 막시밀리안( Maximilian) 1세가 황제로 등극하면서 군주제를 수립했다.



멕시코의 불운한 막시밀리안( Maximilian) 황제의 통치 기간은 5년도 채 되지 않았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군주 치고는 의외로 자유로운 사상을 갖고 있었다.


이후, 미국의 지원을 받은 Juárez가 이끄는 게릴라들의 거센 저항으로 1867년 마침내 프랑스군이 철수하고 막시밀리안 1세와 그의 최고 장군들이 처형되면서 제2 멕시코 제국은 막을 내렸다.


1867년 멕시코의 푸에블라 전투 승리와 프랑스군의 패배는 국내 및 국제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는데 패배 이후 어떤 유럽 세력도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잘 알지 못하지만 1862년 5월 5일에 있었던 푸에블라 전투는 미국의 역사와 운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멕시코가 프랑스의 개입에 맞서 싸우는 동안 미국은 남북 간의 내전에 휘말려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저스토 시에라( Justo Sierra)는 그의 저서 "멕시코 민족의 정치적 진화(Political Evolution of the Mexican People)"에서 프랑스가 푸에블라에서 패배한 후 1년 동안 지체하지 않았다면 멕시코-텍사스 국경까지 북진하여 미국 남북전쟁에서 남부 동맹을 지원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최근 베니토 후아레스(Benito Juárez )가 쓴 편지를 포함해 역사적 인물들이 프랑스-멕시코 전쟁 중에 쓴 36통의 멕시코 편지를 입수했는데, "이 편지들은 2차 프랑스 개입과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경쟁하는 세계 열강들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미국 의회도서관 커뮤니케이션실의 작가 닐리 터커(Neely Tucker)는 말한다.


한 희귀 서적 판매상으로부터 입수한 이 편지는 푸에블라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예상치 못한 패배가 미국 남북전쟁에서 남부 동맹에 종지부를 찍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이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남부연합을 지원한 국가는 없었지만 프랑스는 지원 여부를 논의 중이었기 때문이다.



로레토(Loreto) 요새와 과달루페(Guadalupe) 요새는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역사가이자 전 미국 외교관인 클락 크룩-캐스턴(Clark Crook-Castan)에 따르면 프랑스의 패배는 남북전쟁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프랑스군은 장거리 대포를 육로로 텍사스까지 운송하여 동부의 남부 연합군에게 전달함으로써 연합군의 해상 봉쇄를 막고자 했다"라고 크룩-캐스탄은 의회 도서관 블로그에서 터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런데, 푸에블라 전투 에서 패배로 프랑스의 계획 실행이 지연되었고, 1863년 여름이 되어서야 멕시코-텍사스 국경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무렵 율리시즈 그랜트(Ulysses S. Grant) 장군은 이미 미시시피주 빅스버그 전투에서 승리하여 남부 연합군의 서부로부터의 무기 접근을 차단한 상태였다.


미국에서 신코 데 마요(Cinco de Mayo)를 기념하는 것은 1863년 멕시코가 푸에블라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이 캘리포니아주 컬럼비아의 멕시코 광부들에게 전해지면서 시작되었다.

멕시코 국민들은 프랑스의 개입에 저항한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축제를 열었다.


오늘날 멕시코계 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거의 모든 도시인, 150개 이상의 도시에서 축제가 열리며, 가장 큰 축제는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다. 멕시코의 데킬라 및 맥주 회사와 아보카도 수출업체는 매년 수백만 달러를 광고에 투자하여 비멕시코계 미국인들에게 'Cinco de Mayo' 를 널리 알리는 데 사용하고 있다.


Cinco de Mayo는 멕시코의 연방정부의 공식 공휴일은 아니지만 푸에블라와 베라크루즈에서는 주 공휴일이다. 주로 푸에블라에서 퍼레이드, 전투 재연, 공식 휴일 요리인 mole poblano(고추, 초콜릿, 향신료가 들어간 소스)가 열리는 등 다양한 축제가 열린다.



미국과 멕시코 일부 지역에서 매년 기념하는 축제로, 5월에 열리는 최고의 축제 중 하나다.

푸에블라 전투에서 멕시코군이 프랑스군을 상대로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이 날에는 군사 퍼레이드, 전투 재연 등의 기념행사가 열리는데 멕시코의 도시 푸에블라에서만 기념하는 축일이다.

사진은 2023년 올해의 행사 모습이다.



Margarita나 Tequila 한 잔을 마시며 'Cinco de mayo'를 축하할 계획이라면 푸에블라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친 용감한 멕시코 군인들을 위해 건배하라.

그리고 역사학자 크룩-카스탄(Crook-Castan)의 말을 기억하라


"푸에블라(Puebla)에서의 승리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미국을 구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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