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신문사 기획취재/인터뷰

멕시코 운송업체 'PANTRANS' 홍금표 사장

기업탐방, 그 첫회를 마치며.. 홍금표 사장 그는 누구인가?

순수 100% 교민기업으로 멕시코에서 성공한 기업인으로 알려진 홍금표 사장은 올해 57세로 멕시코 이민 30년째의 고참 이민세대다. 어려웠던 초기 유학시절을 극복하고 지금은 멕시코 3대 특수화물운송업체로 성장시킨 그는 우람한 체격에 중저음의 톤으로 이야기 할때면 기업가라기 보다는 조직(?)의 우두머리를 연상시킨다.

 

그런 그가 우연찮게 기업탐방 기사가 나간 후 매우 쑥스러워하면서 지난 이야기를 보충해 풀어 놓았다.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할 정도로 오기와 베짱, 그리고 지혜가 필요하다는 특수 운송업은 치열한 경쟁이 항상 머리를 싸매게 하지만 최종 목적지에 도착해서 안전하게 인계를 했을때 뿌듯한 보람과 기쁨에 "그런 고생도 즐겁다" 고 한다. 일을 즐기는 스타일로 한때는 연주단을 만들어 베이스 기타를 연주할 정도로 낭만적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어렵게 고생하다가 돈을 번 경우 3가지의 부류가 있다고 한다.

 

첫째, 자신에게는 관대하지만 남에게는 아주 인색한 사람이다. 일명 '졸부'라고 불리는 경우다. 내세우기를 좋아하며 과거에 대한 보상심리로 자기 치장에 아주 적극적이다.

두번째로 자신에게도 가혹하리만큼 인색하면서 남들에게도 인색한 경우다. 욕은 얻어먹어도 경우가 밝으며 큰 부자는 되지 못하고 작은 부자가 이에 속한다고 한다. 

셋째로 자신에게는 인색하면서 남들에게는 후한 경우다. 즉 "쓸때는 확실하게 쓴다" 는 경우로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한다" 는 생각이 강한, 대부분 기업가가 이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사장의 경우 여기에도 해당하지 않는 자신과 남에게 모두 후한 아주 특이한(?) 경우다. 인생을 즐기는 스타일에 속한다고나 할까?  이런 낙천적인 성격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오늘의 그를 있게 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성공하기까지 수많은 사연과 곡절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 사연이라는 것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비난 받지 않고 부를 이루었다면 우리는 분명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우러러본다. 한때 우리사회에 회자되었던 '청부론' 이다.지금까지 살아온 그의 인생여정이 앞으로 더욱 빛나고 성공할 것이란 기대치는 한번쯤 가져볼만한 기업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기사내용

 

멕시코의 속살을 휘젓는 1580km의 물류 대장정이었다. 각각의 전장이 무려 40m에 달하는 트레일러 트럭 3대가 멕시코의 백두대간 격인 시에라마드레오리엔탈 산맥 길을 굽이굽이 오르고 있었다. 한 대의 트럭마다 길이 25m, 무게 120t, 폭 3.92m, 높이 3.20m짜리 초대형 화물들이 실려 있었다. 거기에 총괄 지휘 차량과 6대의 콘보이 차량까지 더해 모두 13대의 차량이 움직이는 대규모 운송작전이었다. 특수차량 운전기사와 엔지니어, 차량 정비사 등 모두 25명의 전문가들이 3박4일 동안 진행하는 대장정이었다. 직원들은 모두 밝은 오렌지색 오버롤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작업복 위에는 ‘판트란스’(Pan Trans)라는 상호가 새겨진 빨간색 조끼를 받쳐 입었다. 멕시코 물류업계에서 특수화물과 항공화물, 해상화물, 창고업, 택배업, 통관업무 등 물류와 연관된 일체의 서비스를 일괄 제공하는 유일의 운송업체인 ‘판트란스’의 작업 현장이다.

 

▲ 건설현장에서는 제법 잘 어울릴것 같은 건장한 체격의 홍금표 사장은 의외로 섬세한 면이 있다.  그의 그런 면이 좋아서일까?그의 옆에서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며 묵묵히 일하는 임원들은 대부분 10년이상 장기 근속일 정도로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대단하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떠나는게 경리직원이라고 한다.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Pantrans는 성장통을 넘어 이제 안전한 궤도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무전기 손에 들고 차량 진행상황 조율

그랜드 체로키 방탄차량의 좌석에 앉은 50대 중반의 동양인 남자가 행렬의 앞뒤를 오가며 운송작전을 총괄 지휘하고 있었다. 다른 직원들과 똑같은 모양의 작업복 차림을 한 그는 소형 무전기를 손에 들고 차량의 진행 상황을 조율하고 있었다. 이번 1580km 대장정을 총지휘하는 홍금표(57) Pantrans 사장이다.홍 사장의 판트란스는 현재 연간 1500만달러 안팎의 매출을 올리는 멕시코 3대 특수화물 물류기업 중 하나다. 홍 사장은 특히 초대형 중량물 운송을 특화하면서 멕시코의 산업 인프라를 바꾸는 굵직굵직한 공사 현장의 자재 운송을 맡아서 하고 있다. 홍 사장은 폐자원 활용 및 재생 기업인 코람(Coram)도 운영하고 있다. 코람은 정유공장에서 나오는 산업폐기물인 폐촉매에서 유가금속 등을 추출하는 기업이다. 현재 삼성엔지니어링이 공사를 진행중인 산루이스델라파스의 ‘인터젠’ 복합화력발전소의 발전설비 운송작업을 비롯해 테친의 페멕스 화학단지, 푸에블라와 산루이스포토시의 포스코 강판공장및 멕시코 6개 정유 공장의 현대화 프로젝트, 지엠과 닛산 자동차 조립 공장등 대형 사업장의 장비와 건자재 운송을 담당했다.

 

홍 사장의 이번 미션은 멕시코 만 알타미라 항구로 들어오는 초대형 발전설비들을 멕시코 중북부 산루이스델라파스의 인터젠 열병합 발전소 건설 현장까지 운송하는 일이었다. 멕시코시티에서 시작해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커다란 오(O)자 모양을 그리며 멕시코 내륙을 관통하는 루트였다. 구간별로 홍 사장의 여정을 정리하자면

 

▲멕시코시티에서 멕시코 동부의 탐피코까지 550㎞를 비행기로 이동하고, ▲그곳으로부터 차로 30여㎞ 떨어진 태평양변의 알타미라 항구로 가서, ▲두산중공업 베트남 공장에서 배편으로 실려 온 120t 짜리 배열회수보일러(HRSG) 세 대를 바퀴96개 달린 초대형 트레일러 세 대에 각각 실은 뒤, ▲각 트레일러 당 특수중량물 운송차량인 프라임 무버 두 대씩을 연결해서는 알타미라~시우다드빅토리아~툴라~산루이스포토시~산루이스델라파스 구간 750㎞를 달려야하고, ▲산루이스델라파스 인터젠 열병합발전소 건설현장에 도착해서는 공사를 맡은 삼성엔지니어링에 배열회수보일러를 인계한 뒤, ▲인수한 물건의 이상유무를 확인하고, 운송 차량을 점검한 뒤 산루이스델라파스~멕시코시티 구간 250㎞를 달려 회사 차량기지로 돌아오는 과정이었다.

▲  판트란스의 홍금표 사장이 알타미라 항구에서 750km 떨어진 산루이스델라파스의 인터젠 열병합발전소까지 120t짜리 배열회수보일러(HRSG) 3대를 운송하는 작업을 지휘하고있다.

▲ 현장에서 직접보는 화물은 엄청난 크기에 압도 당한다. 과연 저런 크기의 화물을 어떻게 실을 수 있으며 어떻게 운송할수 있을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무장한 군인들과 갱단.. 때로는 목숨을 걸고 위험을 감수해야

아침 7시 홍 사장과 함께 멕시코시티 공항에서 탐피코행 비행기에 올랐다.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한 하루였다. 이륙 후 45분 만에 도착한 탐피코 공항에는 판트란스의 이남수 부장이 차를 가지고 나와 홍 사장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일까.

 

탐피코 공항에는 완전무장을 한 군인들이 쫙 깔려 있었다. 기관총을 장착한 장갑차까지 앞세운 중무장 병력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었다. 마치 계엄령이라도 내려진 것처럼 살벌한 분위기였다.이 부장의 차를 타고 알타미라 항으로 향했다. 항구로 가는 길목 곳곳에서도 군인과 경찰이 합동으로 오가는 차량과 사람들에 대한 검문검색을 삼엄하게 실시하고 있었다. 알타미라 항구에 도착하자 화물을 적재한 두 그룹의 특수화물 운송 차량과 장비가 이 세관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 부장이 이미 화물에 대한 모든 통관절차를 깔끔하게 마무리 해 놓은 상태였다. 1호차는 아침 7시 목적지인 산루이스델라파스를 향해 이미 떠났고, 2호차와 3호차는 세관 게이트 앞에서 최종 통관 허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관 경찰이 마약 탐지견인 벨기에산 셰퍼드를 앞세운 채 화물 구석구석을 검사했다. 셰퍼드는 펄쩍 펄쩍 뛰면서 이곳저곳 코를 들이밀고는 킁킁 냄새를 맡았다. 

 

마침내 세관 문이 활짝 열렸다.프라임 무버들이 힘차게 시동을 건다. 장장 750㎞의 멀고 험한 여정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시속 100㎞ 이상 쌩쌩 달리는 일반 차량들과는 달리 화물의 중량 때문에 평지에서도 20~35㎞의 저속으로 달려야 한다. 오르막에서는 5~10㎞ 정도의 거북이걸음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전장40m짜리 트레일러트럭이 두 대씩이나 도로에 나서니 그야말로 일대 장관이다. 느릿느릿 그러나 묵직하게 길을 나선다.앞서 간 1호차까지 한꺼번에 도로에 나설 경우 차 간격까지 따지면 전장 300m 이상에 달하는 장대한 행렬이었다.알타미라에서 북쪽으로 83번 도로가 뻗어 있었다.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널찍한 4차선 도로에 승용차는 거의 눈에 뛰지 않았다. 승용차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나라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대형 유조차량과 화물트럭만이 이따금 썰렁한 도로를 오갈 뿐이었다. 홍 사장에게 그 까닭을 물어보려는 순간 그의 무전기 신호음이 울렸다. 판트란스 운송 현장팀 간 교신은 물론 본사와의 연락도 멕시코 전역을 커버하는 무전기로 교신을 하고 있었다. 판트란스 본사를 지키고 있는 홍승표 이사로부터 걸려온 무전이었다. 홍 이사는 홍 사장의 친동생으로 판트란스의 관리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홍 이사 : “사장님, 알타미라 항구를 출발하셨나요? 그쪽 상황 아주 험악하지 않습니까? 아주 걱정스런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홍 사장 : “도대체 무슨 일이지? 여기 지금 중무장한 군인들이 쫙 깔려있어요. 군 장갑차까지 출동한 건 처음 보는데.”

홍 이사 : “그 쪽 지역의 갱단 간에 무시무시한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지난 금요일부터 어제 월요일까지 4일 동안 모두 28명이 죽었답니다. 지금 막 신문을 보고 놀라서 전화를 드렸어요. 정말 조심하셔야겠습니다.”

 

홍 이사는 몇 번이나 조심하라는 말을 하고는 무전을 마쳤다. 홍 사장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멕시코 언론들은 지방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 뉴스를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멕시코시티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지요.게다가 갱단과 관련된 기사를 언론에서 다루기를 꺼려해요. 갱단의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지요. 전 세계에서 멕시코만큼 언론인 납치 및 피살 사건이 많은 나라도 드물 겁니다. 무려 나흘간이나 갱단끼리 죽고 죽이는 총격전을 벌였는데도 이제야 알려질 정도입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망자수가 28명 이라고 하지만 아마도 훨씬 많을 거예요.

 

우리가 지금 지나고 있는 이 지역이 타마울리파스인데 31개 멕시코 주 중에서 가장 치안이 불안한 곳입니다. 낮에는 멕시코 공권력이 장악을 하지만, 밤에는 갱 조직이 접수하는 곳이죠. 저렇게 서슬이 퍼런 군인과 경찰들도 밤이 되면 그림자도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철수를 합니다. 대낮에도 일반 차량들은 이 지역으로 아예 들어오지 않을 정도예요. 도로에 지나다니는 차량 좀 보세요. 승용차는 거의 없어요. 특히 벤츠나 아우디 등 번쩍거리는 차량이 지나가면 그건 여지없이 갱단의 밥이 되고 말지요.

타마울리파스에서는 양대 갱단이 피 터지는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로스세타스와 걸프카르텔이라는 조직인데 미국으로 들어가는 마약 공급 주도권을 놓고 전쟁을 하는 거예요. 공권력도 소용이 없어요. 갱단 활동을 저해하는 정책을 펴는 주지사나 시장, 마약범들에게 무거운 형량을 내리는 판사, 자기들에게 협조하지 않는 경찰 등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살해를 합니다. 아예 가족을 몰살시키는 경우까지 있어요.

 

이곳 현지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2006년부터 현재까지 멕시코에서 마약관련 폭력사건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8만 명이 넘습니다 .갱단 스파이들이 안 박혀 있는 곳이 없어요. 정부군이 갱단이 장악한 지역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뭔지 아세요? 그곳 경찰을 무장해제 시키는 일입니다. 갱단과 내통하는 경찰이 워낙 많기 때문이에요.

요즘 멕시코 상황은 1980년대 중후반~1990년대 초반 콜롬비아를 연상케 합니다. 당시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콜롬비아를 아비규환으로 만들었잖아요. 지금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이 지역은 파블로 에스코바르 당시의 콜롬비아 상황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앞으로 우리가 통과해야 하는 알타미라에서 툴라까지 이르는 350㎞ 구간은 갱단의 출몰이 잦은 지역입니다. 오늘과 내일은 꼬박 갱단이 장악한 지역을 통과해야 해요.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 80여m의 대형화물 운송행렬이 도로를 지날때면 일대 장관을 이룬다. 이처럼 대형특수화물 운송은 운전기사를 포함, 차량 엔지니어와 선도차량, 경호차량 등이 함께 움직이며 철저한 관리로 목적지까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며 안전운행을 도모한다.

▲ 초대형 화물운송에는 빨리 운송해야 하는 시간보다는 사고없이 정확히 목적지에 도착하는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운송전에 수차례에 걸쳐 현지답사를 통해 하는 지역의 장애물 점검은 필수다.

민가 마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들판 길이 계속 이어졌다. 마음은 급했지만 평지에서도 시속 30㎞ 안팎의 저속 운행을 할 수 밖에 없는 특수중량화물 트레일러의 진행은 더디기만 했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전방을 주시하던 홍 사장이 낮은 목소리로 운전기사인 아르투로 바우티스타에게 말했다.

 

홍 사장 : “데스파시오(천천히)! 저쪽 오른쪽 길 건너 허옇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거 보이나요? 저기서 왜 연기가 피어오를까?”

아르투로 : “무슨 일일까요? 혹시 갱단끼리 아직도 전쟁을 하고 있는 걸까요?”

 

홍 사장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수풀사이에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속도를 조금 낮춘 채 극도의 긴장 속에 앞으로 나아갔다.다행히 연기의 정체는 빈 들판의 둑을 태우고 있는 들불에서 올라오고 있는 것이었다. 주변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홍 사장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홍 사장 : “이곳은 쿠아우테목이라는 마을인데 로스 세타스와 걸프 카르텔 간 총격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에요. 가장 위험한 곳이지요. 경찰이 이곳에서는 절대 정차하지 말라고 지침을 줄 정도입니다.”

계란을 가득 담은 바구니를 옮기듯, 무거운 돌을 들고 살얼음판을 건너듯 조심스런 행보
멕시코 한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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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엿뉘엿 해가 서편으로 기울고 있었다. 첫날 목적지는 출발지인 알타미라에서 230㎞ 떨어진 시우다드빅토리아였다.목적지까지 30여㎞ 남겨둔 지점에서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경찰 순찰차량 두 대가 전 속력으로 어디론가 쏜살같이 내빼고 있었다. 홍 사장의 말대로 밤이 되면서 어두워지기 전 급하게 철수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해가 많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로는 썰렁하게 비기 시작했다.특수화물차량은 날이 어두워지면 무조건 운행을 중단해야했다.

홍 사장 : “1호차 현재 위치, 보고 바랍니다.”

1호차 : “지금 막 시에라 마드레 오리엔탈 산맥을 무사히 넘었습니다. 하우마베라는 작은 마을까지 왔습니다. 아직 해가 많이 남아서 잘하면 뚤라까지도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홍 사장 : “오늘은 그곳 하우마베에서 1박을 하시기 바랍니다. 해가 아직 남아 있지만 더 이상 운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직원들 식사 잘 챙겨주시고, 일찌감치 푹 쉬시기 바랍니다. 고생하셨습니다.”

1호차 : “네, 사장님. 하우마베에서 차량 점검하고 쉬도록 하겠습니다.”

홍 사장 : “3호차 나오세요. 3호차는 어디까지 오셨나요? 지난번 운송 때 3호차 프라임 무버의 기아박스에서 문제가 발생했었지요? 오늘 상태는 어떻습니까?”

3호차 : “아주 감 좋습니다. 언덕길 올라갈 때도 아무 이상 없습니다. 현재 우리 위치는 곤잘레스 지방에 있는 주유소입니다. 연방도로경찰 순찰차량이 더 이상 운행을 하지 말라고 권고를 해서 이곳에 정차를 했습니다.”

홍 사장 : “잘 하셨습니다. 주유소에서 1박을 하고 내일 아침 일찍 움직이도록 합시다. 고생하셨습니다.”

 

아침 일찍 출발한 1호차와 2호차의 거리는 105㎞, 2호차와 3호차 간 거리는 140㎞ 간격으로 벌어져 있었다. 홍 사장은 가운데 2호차와 함께 움직이면서 전체 운송작전을 꼼꼼하게 조율하고 있었다.

 

계란을 가득 담은 바구니를 옮기듯, 무거운 돌을 들고 살얼음판을 건너듯 조심스런 행보였다.

▲ 도로를 운행중에 교각높이가 낮아 대형화물이 통과를 하지 못할때에는 해당 다리를 뜯어내고 통과한 후 다시 다리를 놓기도 한다. 원상복구에 상당한 비용이 발생한다.

“3호차는 1호차나 2호차만큼 속력을 낼 수가 없어요. 1호차와 2호차는 트레일러를 지탱하는 바퀴 축을 12개씩 달고 있습니다. 그런데 3호차는 8개짜리 축으로 지탱을 하고 있어요. 3호차의 바퀴들이 감당해야 하는 하중이 훨씬 무겁기 때문에 천천히 운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3호차가 지금 가장 위험한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오늘 밤은 경찰이 권고하는 대로 주유소에서 안전하게 보낼 수 있을 거예요.”

 

다 찌그러져가는 작은 집 두 채가 외딴 길가에 서 있었다.그 중 하나는 과자 부스러기와 술 등을 파는 꾀죄죄한 구멍가게였고, 또 다른 하나는 자동차 타이어 펑크를 때우는 집이었다.가게 앞에는 대형 트레일러 차량을 주차시키기에 넉넉한 공간이 있었다.‘피라미드 미니슈퍼’라는 간판이 어둑어둑해지는 도로 변에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오늘 저녁 2호차는 이곳에서 묵어야 합니다. 시우다드 빅토리아에 닿기 전 해가 저물면 밤을 보내는 곳입니다. 우리의 임시대피소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지요.”

 

거대한 트레일러 차량 행렬이 들어서자 너 댓 명의 주민들이 마중을 나왔다.홍 사장이 이들과 구면인 듯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집 안쪽으로 아담한 마당이 들어서 있었다. 마당에 매어 있는 어미 개 한 마리가 펄쩍펄쩍 뛰면서 나그네들을 반긴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강아지 한 마리도 깡충거리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미니슈퍼 집 주인 내외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10여명의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 멕시코는 대부분 지방이 더 안전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는 마약 조직간의 세력다툼으로 국가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도 있으며  특히 야간에는 무법천지가 되기도 한다.이런 지역을 통과해야 하는 화물 운송은 극히 위험해 도중에 쉬어가는 주변 민가는 이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소중한 존재다.

부랴부랴 솥에 물을 끓이랴, 감자를 씻으랴, 야채를 다듬으랴, 정신이 없었다. 어느 새 주인아저씨는 새끼 양 두 마리를 잡아 커다란 양동이에 담아 가지고 나타났다. 마당 한 가운데 작은 모닥불이 지펴졌다. 모닥불 옆에 야외 뷔페식 테이블이 차려졌다.양고기를 삶은 솥이 테이블 위에 통째로 올려 진다. 아로스라고 부르는 쌀밥, 우리나라 팥죽과 맛이 흡사한 삶은 콩 요리인 후리홀, 옥수수 가루로 부친 빈대떡인 토르티야, 집 앞 풀밭에서 키우는 염소의 젖으로 만든 치즈 등이 뚝딱 테이블 위에 차려졌다.

 

 

하루 종일 긴장 속에 운송작업에 매달렸던 직원들과 함께 맛나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먹어본 양고기 중에서 가장 연한 맛이었다.이렇게 분위기 좋은 자리에 어찌 한 잔술이 빠질쏘냐.홍 사장에게 무심코 반주로 맥주 한 잔 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홍 사장이 무안할 정도로 정색을 하면서 딱 자른다.

“우리 회사에서는 운송 작전 중에는 알코올을 일절 금하고 있습니다.작업 차량이 회사 정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운송을 완료한 후 차고지에 입고하는 순간까지 술을 입에 대서는 안 됩니다. 술을 마시다 발각된 직원은 즉시 해고 조치됩니다. 신입직원을 채용할 때 아예 계약서에 그런 조항을 못 박아 두었어요. 우리가 하는 일이 워낙 민감한 작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괜히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깜깜한 밤중인 게 다행이었다. 그래도 무안해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새 별님들이 온통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바로 머리 위에서 북두칠성이 선명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하늘엔 별, 땅에는 모닥불이 빛나는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저는 아무래도 야전체질이에요. 이렇게 현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어울릴 때 무척 행복합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거든요. 저희 고객들은 제가 직접 현장을 뛰고 있다는 걸 잘 압니다. 최고경영자가 직접 나서서 궂은일을 하는 걸 알고는 더 큰 신뢰를 주는 거 같아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아무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 운송중에 다리를 만나서 그냥 통과할수 있으면 행운이다. 초대형 화물의 경우 다리 통과를 허용하는 기준치를 초과 할 경우 다리를 해체하고 통과 후 다시 다리를 놓아야 한다. 사전 답사에서 걸러지는 부분이지만 참으로 난감할때가 많다. 때로는 이런 제반 비용이 운송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는 말이 생각날때가 있다.

▲ "세상에 공짜는 없다" 라는 명제는 운송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지역마다 거치게 되는 주요 도로는 대형 화물로 인해 각종 문제들이 생기기도 한다. 안전운행과 제때 현장에 도착시켜야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어려운 숙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는 관청이 있으니  바로 지역 경찰들이다. 눈치빠른 경찰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경우가 많다.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피할수 없는 거래다.

홍 사장이 들려주는 영화보다 무섭고, 끔찍한 이야기들

저녁을 먹은 뒤 홍 사장이 운전기사인 아르투로 바우티스타, 수석 엔지니어인 후안 에르난데스를 대동한 채 그랜드 체로키 방탄 차량에 올랐다. 30㎞ 전방에 있는 시우다드 빅토리아로 가서 잠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였다. 

 

“이곳에서는 우리만 잠자리가 없는 상황입니다. 대형트럭에는 기사들이 잠을 잘 수 있는 공간들이 다 있어요. 저희는 지금 시우다드 빅토리아 시내로 나가야 해요.”

 

으스스한 거리였다. 밤 10시가 채 안된 시각인데도 시우다드 빅토리아 시내엔 문자 그대로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를 않았다. 인적이 완전히 끊어진 거리는 괴괴하기 그지없었다. 몇 해 전 보았던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라는 좀비영화의 도입부가 연상되는 괴괴한 거리였다.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은 채 런던의 한 병원에서 누워 있던 주인공이 28일 후 깨어나 보니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라고는 자기뿐임을 발견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놀란 나머지 거리로 뛰쳐나가 보니 그렇게 붐비던 런던 시내 어느 곳에서도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아 볼 수 없었다.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침팬지들이 케임브리지 대학 의학연구소 실험실을 탈출,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물어뜯기 시작하고, 침팬지에 물린 사람들은 좀비로 변해 성한 사람들을 공격한다는 내용의 좀비 영화다.

 

그러나 홍 사장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좀비영화보다 더 끔찍하고 메스껍기조차 했다.


“오죽하면 군인이나 경찰들마저도 해가 지면 숨어버리겠어요. 일반인들은 거리에 나설 엄두조차 못 내지요. 할리우드 마피아 영화는 멕시코에서 일어나는 갱들의 만행과 비교하면 아이들 장난입니다. 정말 엽기적인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납니다. 살해한 상대 조직원들의 머리를 잘라낸 뒤 몸통과 팔다리만 붙어 있는 시신들을 번잡한 시내 육교에 주렁주렁 거꾸로 매달아 놓는 사건들이 여러 번 있었어요. 가장 세상을 경악하게 했던 잔인한 만행은 ‘포졸레로 사건’입니다.
2009년 1월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바하 캘리포니아 주에서 발각된 사건이지요. 포졸레는 우리나라의 곰탕과 비슷한 음식이에요. 그 포졸레를 만드는 요리사를 포졸레로라고 부릅니다. 갱단들이 살해한 300여구의 시신을 드럼통에 집어넣고 염산으로 녹인 끔찍한 사건이지요. 드럼통 속에서 일부 뼈만 드러난 채 곰탕처럼 녹아있는 시신들의 사진이 당시 신문에 그대로 보도됐었습니다. 언론에서 이를 ‘포졸레로 사건’ 이라고 명명을 했지요. 언론에서 포졸레로로 불린 그 처리사는 주당 600달러를 받고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고 하네요. 도대체 인간은 돈 때문에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 걸까요?”     

 

뜻밖에도 호텔 주차장은 차량으로 빡빡하게 들어차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급하게 호텔로 피난을 온 사람들이었다. 갱단의 등쌀로 대부분 호텔들이 문을 닫았기 때문에 영업을 계속하는 한 두 개 호텔로 사람들이 몰린 것도 주차장이 붐비는 이유였다. 차들로 가득한 주차장과는 달리 호텔 로비는 썰렁했다.콧수염을 기른 나이든 할아버지 한 분이 프런트 데스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여기 분위기는 조금 나은 편이네요. 2012년 9월 멕시코 동북부의 산페르난도라는 곳으로 출장을 갔을 때는 정말 오싹했어요. 당시 삼성엔지니어링이 멕시코 중북부 치와와에서 열병합 복합화력발전소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었어요. 삼성엔지니어링으로부터 설비 운송 작업을 발주 받고는 사전 ‘루트 서베이’를 나갔을 때였습니다. 우리 엔지니어 한 명과 함께 저녁 때 산페르난도의 한 호텔로 들어갔어요. 객실이 200여 개 되는 큰 호텔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사연인지 그 큰 호텔에 인적이라고는 없더라고요. 프론트 데스크에 아주머니 한 분만 덜렁 앉아계셨습니다. 방에다가 여장을 풀고 내려와 아주머니에게 근처에 맥주 한 잔 할 곳이 없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아주머니가 이상한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시더니 그냥 조용히 잠만 자고 아침 일찍 떠나는 게 좋을 거라고 하더군요. 객실이 200개가 넘는 호텔인데 손님이 저랑 우리 엔지니어 딱 두 명 뿐이었어요. 아주머니 말로는 산페르난도 시민 60~70%이상이 갱단들 때문에 떠났다는 거예요. 너무 오싹해서 잠은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날이 밝자 마자 빠져 나왔습니다.”

 

홍 사장의 흥미진진한 삶의 이야기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각, 홍 사장과 후안, 아르투로와 함께 호텔을 나섰다. 2호차가 밤을 보낸 미니슈퍼 앞으로 돌아오니 직원들이 분주하게 차량 상태를 점검하며 출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2호차는 오늘부터 험준한 시에라 마드레 오리엔탈 산맥을 오르기 시작해야 한다.동편 들판 너머로 찬란한 아침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둠을 물리치는 찬란한 빛이었다.육중한 트레일러 차량 행렬이 다시 길을 나선다. 트레일러 행렬은 거대한 거북이처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전진한다. 홍 사장과 그랜드 체로키 방탄차량에 다시 올라 2호차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시우다드 빅토리아 를 벗어나 얼마나 달렸을까.울퉁불퉁 근육질을 자랑하는 거대한 산맥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탄하던 도로에 오르막 내리막 경사가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이번 운송작전 중 가장 난코스인 시에라 마드레 오리엔탈 산맥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시우다드 빅토리아에서 툴라에 이르는 170㎞ 구간은 매우 험난한 산길입니다. 화물 무게 120t에다가 트레일러와 견인차량 두 대의 하중까지 전부 합치면 모두 250t이나 되는 차량 행렬이 해발 1000m가 넘는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아주 민감한 역학적 계산을 필요로 하는 구간이에요.”

 

그 순간 앞에서 달리고 있는 2호차 트레일러의 오른쪽 바퀴들이 차도를 벗어나 갓길을 물고 운행을 하기 시작했다. 홍 사장의 날카로운 눈이 그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고 잡아내었다.즉각 무전기로 2호차를 호출한다.

 

▲ 오르막을 오를때는 너무 길게 이어진 화물트럭때문에 추월을 못해 뒷 차들이 꼬리를 물고 정체가 되기도 한다. 미안하기도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긴 화물 행렬로 인해 추월은 감히 꿈도 못꾼다.  언제 앞차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추월은 목숨을 담보로 내놓은 위험천만하기 때문이다. 이럴때 노련한 운전자는 멀리 내다보고 뒷차에 추월 신호를 가끔씩 보내준다. "책임은 못진다"며..

홍 사장 : “2호차, 갑자기 오른쪽 갓길로 치우친 채 운행하고 있어요. 무슨 일인가요.”

2호차 : “아무 이상 없습니다. 우리 차량을 추월하려고 하는 대형 유조차에게 공간을 내주기 위해 그런 것입니다"

홍 사장 : “그래도 혹시 모르니 트레일러 축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산맥으로 진입하기 전에 차량 점검을 다시 한 번 합시다.”

 

2호차가 갓길에 정차를 한다.

 

견인차량 프라임 무버와 콘보이 차량에서 내린 기사와 엔지니어들이 커다란 몽둥이로 트레일러 바퀴들을 하나씩 퉁퉁 쳐가며 공기압의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트레일러 밑으로 들어가 구석구석 확인하는 직원들의 모습도 보였다. 아무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 다시 시동을 건다. 차량의 속력이 시속 10㎞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굽이굽이 협소하고도 가파른 고갯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었다. 키 큰 선인장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이어졌다. 고개를 길게 늘여 뽑은 채 늘어선 선인장들의 모습은 마치 신기한 차량 행렬을 구경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홍 사장은 도대체 무슨 사연으로 멕시코의 깊숙한 산중을 누비며 다니는 삶을 살게 됐을까. 시에라 마드레 오리엔탈 산맥을 넘으면서 홍 사장의 흥미진진한 삶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제 고향은 강원도 정선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평북 정주 출신의 실향민이셨어요. 이북에 저의 배다른 누님과 형님이 아마 지금도 살아 계실 겁니다. 강원도 삼척출신인 저희 어머니와는 재혼을 하신 거지요. 어린 시절 저를 키운 건 바로 설악산입니다. 내설악 옥녀탕에서 내려오다 보면 만나는 첫 민가가 바로 저희 집이었어요. 산속을 돌아다니며 칡뿌리 캐고, 산딸기랑 머루를 따먹으며 자랐답니다. 눈이 아플 정도로 총총히 빛나던 별을 올려다보면서 공상도 참 많이 했지요. 저 많은 별들 중 어딘가에 외계인이나 신들이 살고 있을 거라는 확신을 하면서 가슴을 설레기도 했고요.”

 

강원도 산골소년의 가슴을 채웠던 외계인과 신에 대한 궁금증은 어린 시절 한 때의 공상으로 그친 게 아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서울로 이사를 했고, 서울의 남산초교와 대경중을 거쳐 영동고로 진학을 했지만 그의 가슴에는 외계인과 신에 대한 궁금증이 날로 커져만 갔다.

 

“영동고 2학년을 마치고 자퇴를 했어요. 그 당시 저에겐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우주와 외계인, 그리고 신에 대한 의문을 풀고 싶었어요. 학교를 때려치우고는 방에 틀어박혀 외계인 관련 책들과 종교 관련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지요. 에리히 폰 데니켄의 ‘신들의 전차’를 읽을 때는 정말 흥분이 되더라고요. 사실 지금도 안데스 고원에 들어선 마야나 잉카, 나스카 문명들을 보면 정말 불가사의하기 짝이 없어요. 현대기술로도 만들기 어려운 건축물들이 깊은 밀림 속에 들어서 있잖아요. 요즘도 모든 일 다 때려치우고 외계문명의 흔적을 찾아다니고 싶은 충동이 불쑥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우주의 비밀과 신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5년 동안 매달렸어요.

책을 읽다가 지치면 혼자 여행을 다녔습니다. 설악산 숲 속에 들어가 텐트를 치고 며칠 씩 보내기도 했고요. 산 속에 홀로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북한산 형제봉 자락에서 21일 동안 단식기도를 한 적도 있지요. 그 땐 하느님을 꼭 만나 뵙고 말겠다는 일념뿐 이었어요.

 

저를 다시 세상으로 불러들인 건 12.12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였어요. 어느 날 아버지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시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우리 아버지는 그때 모협동 조합의 조합장을 하고 계셨어요. 신군부가 권력을 잡으면서 조합장 자리를 내놓으라는 압력이 들어왔답니다. 선출직이라 물러날 수 없다고 버티시니까 비리로 몰아서 삼청교육대로 끌고 간 거지요. 어머니가 저에게 눈물로 호소를 하시더라고요. 아버지가 저 지경인데 장남인 네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하루 서너 시간씩밖에 잠을 자지 않고 책을 파고들었습니다. 그 덕에 1981년 8월 대입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그해 곧바로 한국외대 스페인어과에 합격을 했지요. 저보다 대여섯 살 어린 동생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겁니다. 막상 들어가 보니 스페인어가 재밌더라고요. 기왕 시작한 공부니까 제대로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동급생들과 함께 스페인어 회화 동아리를 만들어 열심히 공부를 했지요."

억척같이 버쳤던 유학시절
멕시코 한인신문
멕시코 한인신문
멕시코 한인신문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고, 어학을 제대로 하려면 그 말을 사용하는 나라로 가야한다. 홍 사장은 2학년을 마친 뒤 유학을 가기로 결심을 한다. 내친 김에 아예 박사까지 해서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유학이라는 게 지금은 웬만한 집 자식들도 보내고 있지만, 1980년대 중반만하더라도 유학은 그야말로 선택된 소수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어요. 아버지가 삼청교육대에 다녀오고 난 이후로 풍비박산이 난 우리 집안 형편으로는 유학은 정말 보내기 어려운 상황이었지요. 그런 집안 사정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빈손으로라도 유학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남들처럼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싶지가 않았어요. 막연한 해외 동경도 해외유학을 가기로 결심하는 데 한 몫을 했지요.

부모님은 뭐든 일단 마음을 먹으면 밀어붙이는 제 성격을 아시기 때문에 별다른 반대는 없으셨어요. 아버지가 비행기 표 한 장과 1500달러를 쥐어 주시더라고요. 1984년 3월 5일 멕시코 땅을 밟았습니다. 남한 땅의 20배나 되는 거대한 기회의 땅에 맨 주먹으로 들어간 거지요. 그해 9월 부푼 꿈을 안고 멕시코시티에 있는 이베로 대학의 라틴아메리카 문학과에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참 고달픈 유학생활이었어요.

 

방학 때마다 학비를 벌기 위해 멕시코와 미국을 오가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습니다. 정말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입니다. 여행사 가이드와 주유소 도우미, 봉제공장 직공, 주류 판매점원, 오피스빌딩 청소원, 살충제가게 점원 등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 어렵게 학비를 벌었어요. 그렇게 억척스럽게 일을 하면 한 학기 수강신청을 70% 정도 할 수 있는 학비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자취방에서 생활하면서 한 달 100달러로 생활했어요. 50달러는 방값, 나머지 50달러로 식비를 썼습니다. 띠앙기스라고 하는 재래시장 좌판이 있어요. 거기서 감자와 파, 마늘 등 음식재료 사다가 먹으면 버틸 만 했어요. 쇠고기도 그리 비싸지 않았습니다. 학교까지 10㎞인데 차비 아끼려 학교까지 두 시간 넘게 걸어서 통학을 했어요. 학교 근처는 방값도 비쌌지만 한국 유학생들하고만 어울리고 말은 늘지 않을 거 같아서 멀찍이 얻었지요.

 

여름방학 6~8월은 아예 로스앤젤레스에 살면서 아르바이트를 했지요. 하루 평균 17시간 정도 일을 했습니다. 주말엔 22시간씩 일을 했고요. 라틴계 아이들은 주말에 일하기 싫어해요. 그 아이들 몫 3~4시간씩을 더 받아서 했습니다. 하루 두 가지 일은 보통이었지요. 주유소에서 12시간 일을 한 뒤 살충제 가게에 가서 5시간 일을 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주류 판매점에서 일을 할 때는 이런 일도 있었어요. 아침 일찍 가게 앞마당에서 비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굉장히 붐비는 지역인데 그날따라 거리가 조용했어요. 오늘 무슨 날인데 이렇게 손님이 없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날이 1월1일 새해 첫날 아침이더라고요. 어느 날 밤엔가는 흑인촌 초입의 주유소 방탄 유리 부스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트래픽이 없어야 할 밤 시간에 수없이 지나는 차량의 행렬을 보면서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생각해 보니 12월 24일 크리스 마스 이브더라고요. 그렇게 날짜 가는 것도 모르고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유학생활 6개월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멕시코에서 여행사 가이드 일을 시작했지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국인 여행사인 미들웨스트투어에서 한 달에 두 번 3박 4일짜리 멕시코 투어 상품을 운영했습니다. 멕시코시티 소칼로와 국립인류학 박물관, 테우티우아칸 유적을 둘러 본 뒤 은광으로 유명한 타스코, 일몰과 절벽 다이빙으로 널리 알려진 아카풀코 등을 도는 일정이었습니다. 4년 동안 가이드 생활을 했는데 월 800~900달러 정도를 벌었어요. 그래도 학비가 모자랐어요."

 

인생은 흐르는 강물을 닮았다. 강물은 흐르다가 산을 만나기도 하고, 낭떠러지를 만나기도 한다. 그러면 굽이굽이 꺾이기도 하고, 깊은 낭떠러지로 떨어지기도 한다. 인생 역정도 숱한 곡절을 그리게 마련이다. 홍 사장은 여행사 가이드와 주유소 도우미, 봉제공장과 주류 판매점 점원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렵게 마련한 학비로 7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지만 대학원 진학을 포기한다. 학문의 길로 가겠다는 당초의 결심을 아예 접은 것이다.

 

“공부를 하다 보니 학문은 저의 길이 아닌 거 같더라고요. 설혹 박사 학위를 딴다 하더라도 대학에 자리를 얻는다는 게 하늘의 별따기겠더라고요. 저보다 앞서 박사학위를 딴 사람들과 석, 박사 과정에 있는 선후배들이 까마득하게 줄을 서 있었거든요. 제 앞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지를 절감할 수 있는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외대 스페인어과 교수 채용이 예정돼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논문표절 사건이 터졌습니다. 멕시코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분인데 정말 창피할 정도로 왕창 표절을 했더라고요. 멕시코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망신을 톡톡히 시킨 거지요.

그때 멕시코 유학생들이 모여서 대책을 논의하면서 그분 성토대회를 열었어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 석, 박사 과정에 있는 분들만 모두 40여 명이나 되더라고요. 저보다 앞서 공부를 하고 있는 분들이었지요. 스페인과 콜롬비아 등에서 공부하는 분들도 100명 이상이 됐습니다. 제 앞줄에서 대학 문을 두드리는 분들이었지요. 숨이 턱 막혔습니다. 대학교수가 된다는 건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처럼 보였어요. 그렇다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학문의 길에 정진할 만큼 제가 어학이나 인문학에 남들보다 월등한 천재성을 타고 난 것 같지도 않았고요. 일찌감치 학문의 길을 접기로 했습니다.”

▲ 싣고 내리는 것이 어려운 점도 있지만 바지선으로 해당지역 부근까지 이동할수만 있다면  사실 육로보다는 해로가 더 수월할수도 있다. 이유는 도로에 비해 각종 방해요소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대형화물 운송에는 육상과 해상을 두고 시간과 비용을 꼼꼼히 계산 후 결정 하게된다.

▲ 이처럼 초대형 운송물은 장거리 육로 운송이 어려울 경우 부두에서 곧바로 바지선으로 옮겨 해당 지역의 가장 가까운 지점으로, 거기서 다시 특수 차량으로 옮겨 공사현장으로 운송하게 된다.안전이 가장 중요한 화물은 옮기는 과정에서 아주 정밀도가 요구되기 때문에 극도의 긴장속에 작업이 이루어진다.

새로운 선택, 그리고 새로운 기회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인생의 갈림길 혹은 막다른 골목에 선 이들에게 터키의 서정시인 나짐 히크메트의 시 ‘진정한 여행’은 큰 위안을 준다. 역설 속에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깃들어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학문의 길을 접은 홍 사장에게 주어진 화두였다. 그러나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빈손으로 유학을 결심했던 그 배짱 그대로 홍 사장은 새로운 선택을 주저 없이 하게 된다. 멕시코에서 비로소 진정한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학문의 길을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즈음 마침 원단회사인 ‘P사’에서 취업 제안이 왔습니다. 1989년 8월이었어요. 별로 잴 것도 없이 P사 행을 결정했습니다. 한번 결정하면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성격이거든요. P사의 초봉은 얼마 되지 않았어요. 한 달 600달러였거든요. 당시 제가 여행사 가이드를 하면 한달 기본 800~1000 달러에 가끔 쇼핑 커미션까지 받으면 1500달러 정도 됐거든요. 저랑 거래를 하던 여행사 사장님도 저에게 아예 멕시코에서 여행사를 한 번 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몇 번 하신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여행사는 저와는 여러 가지로 맞지가 않았습니다. 요즘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솔직히 가이드를 하면서 민망한 모습들을 많이 겪었거든요.

비록 P사가 월급은 적었지만 그래도 미래 발전 가능성이 있어 보였습니다. P사의 사장님이 대우에서 근무를 했던 분이었고, 원단 무역을 하는 회사라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결정 하였지요. 그곳에서 1년 반을 근무하고 “내 사업을 해보자” 며 사직서를 내고 1991년 8월 잡화무역을 시작했습니다. 코라멕스라는 무역회사 간판을 내걸었어요. 플라스틱 조화와 화분, 컵, 문구류, 철물 등을 취급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꽝’ 이었어요. 6개월도 못가서 말아먹고 말았습니다. 사실 당시 가장 잘 나가던 물건은 원단이었습니다. 그렇지만 P사와 척지기 싫어서 원단엔 손을 안 대려 했었지요.

 

잡화무역에 실패를 하고 난 뒤 할 수없이 저도 원단무역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우리나라 원단이 불티나게 팔린 때였어요. 당시 시장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멕시코의 보호무역 장벽이 아주 높았어요. 웬만한 물건은 전부 수입금지 품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86~1987년 무렵 멕시코 정부가 수입금지 해제 조치를 단행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원단들이 물밀듯 들어오기 시작한 거지요. 한국산 원단이 값은 싸면서도 품질은 다른 어느 나라 제품에도 뒤지지 않았거든요. 그때가 아마 대구 섬유공장들의 전성기였을 겁니다. 그런 호황이 2004~2005년까지 지속이 됐지요. 당시 우리나라 원단 무역회사들이 멕시코시티에만 40여 개에 달했습니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경영 현대화와 제품 차별화를 해야 했어요.

당시 멕시코 원단 무역회사 중에서는 저희가 처음으로 캐드(CAD, 컴퓨터 이용 설계)를 도입했습니다. 당시 386과 486 컴퓨터를 쓰던 시절이었지요. 컴퓨터 한 대로 직원 30~40명 역할을 했습니다. CAD 덕분에 코라멕스가 멕시코 프린트 디자인 분야에서는 1, 2위로 꼽혔지요. CAD 도입과 함께 제가 도입한 차별화 전략은 소량 다품종 생산이었어요. 중저가 상품을 다량으로 판매하는 것보다는 중상류층 타깃으로 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리스크도 훨씬 덜하고 마진도 10~15%로 높았습니다. 디자인 차별화와 소량 다품종 전략으로 승부를 걸었는데 그게 먹히더라고요. 회사 몸집이 단기간에 불어났어요. 연간 1000만~1500만 달러 매출에 직원 수도 60여명으로 늘어났지요.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었어요. 오퍼상은 실체가 없어요. 실체가 있는 사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봉제를 시작했습니다. 40~50㎡ 규모의 옷가게 매장을 세 곳 냈습니다. 커팅과 디자인은 직접하고 바느질만 외주를 주었지요. 봉제를 시작한 이후 외형매출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이익비율은 크게 늘었습니다.”

 

우연과 필연을 가르는 경계는 무엇일까. 사람이 무언가 마음에 품고 갈구하면 필연이 우연처럼 찾아오는 게 아닐까. 필연이 우연을 가장하고 접근하거나, 아니면 우연이 필연을 만들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원단과 봉제 사업을 하던 홍 사장에게 운송 사업은 우연처럼 슬며시 다가왔다.

 

홀로서기, 그리고 차별화

“저희 회사 원단을 수송해주는 한국계 포워딩 회사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었는데 어느 날 이 회사의 유 사장이 저에게 뜬금없이 운송 사업을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하더라고요. 반반씩 투자를 해서 멕시코 내 운송 사업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유 사장이 멕시코에서도 운송 사업을 벌여놓았는데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미국에 앉아서 멕시코 일까지 하려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지요. 자꾸 배송이 지연되거나, 클레임이 걸리고 했던 겁니다. 그래서 멕시코에 합작회사를 차려놓고 멕시코 쪽 일은 맡기고 싶었던 거였어요. 처음엔 거절을 했어요. 원단 사업이 잘 되고 있었던 데다가 운송의 ‘운’자도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운송업이야말로 실체가 있는 비즈니스더라고요. 이게 바로 내가 찾고 있던 그 사업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뭔가를 결정하면 좌고우면 하지 않습니다.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성격입니다.

유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일을 해보자고 했지요. 1993년 5월 판트란스의 전신인 코라멕스 운송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운송 일을 시작했지만 처음엔 그다지 신경을 쓰지 못했어요. 처음 한두 건 일이 있다가 4~5개월 동안 아예 주문이 없었어요. 원단 일이 바빠서 주문이 안 들어오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난데없이 SK건설에서 클레임이 들어왔더라고요. 당시 SK건설은 마데로 지역에서 정유공장 현대화 건설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정유공장 타워를 마데로 정유공장에 설치하는 공사였어요. 항구에 도착한 타워 부품을 저희 회사에서 운송을 했는데 운송과정에서 파손이 됐다는 거였어요. 저는 금시초문의 일이었어요. 우리 회사에서 그런 운송 일을 한 적이 없었거든요. 알고 보니 유 사장이 동업자인 저를 슬쩍 배제시키고 혼자 일을 처리한 것이었어요. 일이 괜찮아 보이니까 혼자 하려고 욕심을 냈던 거지요. SK건설 측에서는 그것도 모르고 동업자인 저에게 클레임을 제기한 것이었고요. 그런 사람과 어떻게 일을 같이 하겠어요. 그 사건 이후로 곧바로 유 사장과 갈라섰습니다.

 

유 사장과 결별하고 난 이후에 오히려 뜸하던 운송 물량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2004년까지는 원단과 봉제, 그리고 운송 사업을 코라멕스라는 이름으로 병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 남미 경제권이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그쪽에서 거주하던 한인들이 대거 멕시코로 몰려 들어왔어요. 단기간에 무려 만 여명이 유입됐습니다. 그중엔 원단 무역을 하던 이들도 여럿 있었지요. 그러다보니 경쟁이 더욱 격화되고 혼탁해 질 수밖에 없었지요. 불법과 편법이 판치기 시작했어요. 새롭게 들어온 이들이 기존의 원단회사들과 경쟁을 하려다보니까 파격적인 조건들을 제시하기 시작한 거지요. 그전까지는 무역업자들이 멕시코 국경에서 가까운 미국의 라레도 까지만 물건을 갖다 놓으면 됐습니다. 거기서 멕시코로 물건을 들여오는 건 바이어들의 소관이었어요.그런데 남미에서 올라온 분들이 바이어 창고까지 물건을 배달해 주면서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세관을 통관하는 과정에서 불법과 편법도 불사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희 회사 고객들도 하나 둘 이런 방식을 요청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정말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된 거예요.

 

간단하게 이야기 하자면 눈 질끈 감고 밀수에 손을 대느냐, 아니면 깨끗하게 원단장사를 접느냐의 기로에 서게 된 겁니다. 오래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한 이삼 일 고민하다가 그 잘나가던 원단 사업을 접기로 했어요. 돈도 잘 벌리고 애착도 많은 사업이었지만 밀수를 할 수는 없으니까요. 2004년 원단과 봉제 사업을 깨끗하게 털어 버리고 운송사업 외길로 들어섰지요.”

 

멕시코의 특수화물 운송 사업은 아주 보수적인 시장이다. 높은 진입 장벽이 둘러쳐져 있다. 신생업체의 진입로는 바늘구멍이다. 더군다나 운송 사업은 외국인에게 허용되지도 않는 업종이다. 2010년 홍 사장이 멕시코 국적을 취득했지만, 처음 운송 일을 시작할 때는 직원 명의로 사업허가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홍 사장은 운송 업계에 뛰어든 지 10년 만인 2003년 코라멕스 운송을 흑자 기조로 돌려놓았다. 외국인 출신이 운영하는 신생업체가 보수적인 멕시코 특수화물 운송시장의 진입 장벽을 뚫는데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결은 한 마디로 고객에 대한 배려였다. 단순하다면 아주 단순하지만 게으른 사람은 절대로 할 수 없는 특별한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제공한 것이었다.

 

“제가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바로 공중전화와 일일 보고서입니다. 고객들의 특수 화물을 운송하면서 일정 구간을 지날 때마다 공중전화를 이용해 고객들에게 운송 상황을 보고 했습니다. 당신의 물건이 안전하게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다고 알려 준 것이지요. 처음 저희가 운송 사업을 시작할 때엔 휴대전화나 전국을 커버하는 무전기가 나와 있지 않을 때였어요. 공중전화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전화와는 별도로 하루 한 번씩 일일 보고서를 만들어 고객들에게 팩스로 보내주었습니다. 고객이 화물의 운송 상황을 상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함으로써 불안감도 해소시키고, 물건 도착 시점에 맞추어 대비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특히 특수화물 물류에서 시간은 현찰입니다. 예컨대 물건을 하역하기 위해 크레인을 빌리는 데 하루 5천~1만 달러의 비용이 소요됩니다. 물건이 도착하기도 전에 며칠 일찍 크레인을 불러 놓는다던가, 예정시간보다 물건이 며칠 늦게 도착하게 되면 수만 달러가 그냥 날아갈 수도 있는 거지요. 구간별 전화보고나 일일보고서는 고객의 불안감 해소는 물론 불필요한 경비 지출을 막을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고객들이 궁금해 하고 답답해하는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 준 거지요. 모두들 정말 좋아 하시더라고요.”

 

▲ Pantrans 의 널직한 차고에는 언제라도 투입할 수 있는 대형 트럭과 특수 장비들이 이를 관리하는 엔지니어들과 항상 대기하며 출동 준비태세로 정돈되어있다.

세상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이들을 미련하다고 손가락질 한다. 반면에 가다가 아니 가면 아니 간 만 못하다면서 집념의 부족을 나무란다. 어느 쪽 말을 따라야 하는 것일까. 그 기준은 바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미래 가능성과 가치를 스스로 얼마나 확신하느냐 일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믿음으로 오랜 세월 흔들림 없이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은 이들이다. 독이 크면 물을 채우는 데 시간이 걸린다.홍 사장 역시 무려 10년 동안이나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었던 것이다.

 

“몇 년 전에 우리 회사에서 운송 장비를 180만 달러어치 들여 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주변에서 미친 짓이라고 했어요. 다른 경쟁업체들은 있는 장비도 줄이고 인력도 감원할 정도로 운송 경기가 좋지 않았거든요. 회사 내부에도 반대가 심했어요. 당장 돈이 쪼들리는 데 이런 거금을 지금 왜 현찰로 투자하느냐는 불만이었습니다. 당시 간신히 적자를 면하는 상황이었어요. 어려운 상황에서 돈이 퍽퍽 빠져 나가니까 실무자 입장에서는 힘이 들었을 겁니다. 원단사업을 정리하고 나니까 갑자기 현찰이 돌지 않더라고요. 유동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제가 살던 아파트를 포함해서 부동산 몇 건을 처분해 120만 달러 정도와 비상용 자금을 투입해 마련했습니다. 그걸 운송 사업에 몽땅 쏟아 부었습니다.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고 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제 눈에는 꿈틀거리는 물류의 미래가 보였습니다.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였지요. 불황 속에서도 장비는 대대적으로 사들이고, 인력은 한명도 줄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경기가 살아나기 시작하더라고요. SK건설과 삼성건설, 등 우리나라 건설업체들과 외국 기업이 속속 들어오고 여기저기서 정유공장과 화력발전소,

 

LNG터미널 건설 등 대규모 공사를 벌이기 시작했어요. 내수 제작업체에서도 일감이 밀려들기 시작했지요. 우리 회사만이 신속히 장비를 투입해서 일을 맡을 수 있었습니다. 장비를 팔아치우고 인력도 대폭 감원했던 다른 경쟁업체들은 즉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쩔쩔 맬 수밖에 없었지요.”

위기로부터의 깨우침
멕시코 한인신문
멕시코 한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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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의 고도계가 해발 950m를 넘어서고 있었다. 드디어 2호차가 시에라 마드레 오리엔탈 산맥을 관통하는 도로의 최고점에 올라서고 있었다. 정상 부근 공터에 작은 오두막 휴게소가 들어서 있었다.빈 가게를 지키고 있던 노부부가 반갑게 손님을 맞는다. 화덕에는 둥글넓적한 또르띠야(옥수수 가루 떡)가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었다. 곱게 빻은 말린 쇠고기에 계란을 풀어 볶은 마차까와 팥죽과 흡사한 프리홀이라는 음식을 시켜서 먹었다. 프리홀은 우리나라 팥죽이랑 맛이 너무 비슷해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제부터 내리막길이었다.2호차가 가파른 내리막길을 느릿느릿 내려간다. 내리막길에서 더 조심조심 해야 한다. 내리막길에서 가장 위험한 건 스스로의 하중이다. 삐끗하면 자신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 때문에 낭떠러지로 쳐 박힐 위험이 있는 것이다. 오르락내리락 굴곡 없는 길과 삶이 어디 있을까.

 

인생의 내리막길이나 고비에서 역시 외부의 난관도 무섭지만 스스로 지고 있는 짐이 큰 위험 요인이다. 사업을 하면서 늘 주변을 깨끗이 해야 하는 이유다. 홍 사장의 사업도 몇 차례 뒤집힐 뻔 한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사업을 하면서 정도를 고집해온 홍 사장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정공법으로 헤쳐 나갔다.

 

“설혹 늦더라도 정도를 가는 편이 궁극적으로는 더 빠르더라고요. 빠른 길을 가려고 편법이나 불법의 유혹에 빠지면 그게 언젠가는 자신의 발목을 잡는 짐이 되고 맙니다. 사업 역시 부정한 방법을 쓰면 구멍가게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어요. 정도로 가야 회사를 키울 수 있습니다. 원단 사업을 접은 이유도 편법이나 불법과는 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저의 확고한 원칙 때문이었어요. 1999년에 SK건설이 몬테레이 근처 카데레이타 정유공장 건설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20억 달러 규모의 큰 공사였습니다. 그때 공사현장으로 기자재를 운송하는 업무를 저희가 맡게 됐어요. 운송비용이 1000만 달러에 달하는 일이었어요.

 

카데레이타 정유공장 일을 시작한 지 일 년 쯤 지났을 즈음입니다. 갑자기 국세청에서 7450만 페소나 되는 추징금 고지서가 날아들었어요. 우리가 카데레이타 운송대금을 포함해서 이런저런 항목의 탈세를 했다는 겁니다. 당시 환율로 8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100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추징금이었습니다. 처음엔 믿기지가 않더라고요. 경리담당 이사를 불러서 동그라미가 왜 이렇게 많으냐, 국세청에 착오가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했지요. 사실이라고 하더라고요.

처음 빌미는 우리 측 회계 실무자들이 주었어요. 한 분기 회계 보고를 누락했더라고요. 대학 동창까지 불러다가 회계책임자로 앉혀놓고 거기에 회계사 2명, 보조직원을 4명이나 붙여 주었어요. 책잡히지 않게 투명한 경영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 많은 인원이 회계보고를 누락하는 있을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겁니다. 게다가 추징금을 발부하기 전에 국세청 사람들이 회사로 한 번 나왔었고, 경고장도 발부했는데도 아무런 대응을 안 했더라고요. 국세청도 국세청이지만 우리 회계팀 때문에 정말 돌아 버리는 줄 알았어요.

 

그렇지만 한 분기 회계보고를 빠트렸다고 해서 그런 어마어마한 추징금을 발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결국 대응방안은 두 가지였어요. 미리 회사를 매각하고 뜨는 방안과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한 분기 회계 보고를 누락한 것 이외에는 잘못한 게 없었습니다. 멀쩡한 내 회사를 팔아먹고 야반도주를 한다는 건 너무 억울했어요. 그래서 정공법으로 가기로 결심을 했지요. 정식으로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국세청에서 대응법리가 궁할 수밖에 없었지요. 소송을 질질 끌더라고요. 그러다가 결국 행정소송의 시효인 10년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승소한 거나 마찬가지 결과입니다. 지금은 소송 청산 절차를 진행중이예요.

 

두 번째 위기는 2002년 가을에 닥쳐왔어요. 어느 날 출근하는 데 회사 매장 앞에 트레일러가 10여 대나 늘어서 있었습니다. 멕시코 국세청에서 압수 수색 영장을 들고 들이 닥친 거예요. 우리 물건들을 전부 보세 창고로 옮겨서 조사하겠다며 150만 달러가 넘는 원단을 몽땅 실어가 버렸습니다. 일명 ‘오페라티보 티그레(OPERATIVO TIGRE, 호랑이 작전)’ 였어요. 국세청이 밀수업체 일제단속을 벌인 것이었습니다. 당시 주 타깃이 시장의 한국 업체들이었는데 시장 근처에 사업장이 있던 우리도 어부지리로 당한거지요. 국세청에서 저렇게 마구잡이로 들이대는 것은 다 자기들 나름의 계산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밀수한 사람들은 물건을 수입한 자료가 없잖아요. 물건을 압수해 가더라도 대부분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거든요. 소송이 안 들어오면 그걸 시장에 팔아 자기들이 꿀꺽하는 거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곧바로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당당하게 세금 낼 거 다 내고 들여온 물건이었으니까요. 6년 만에 승소를 했습니다. 비록 150만 달러어치 물건을 빼앗기고 60만 달러 밖에 못 받았지만 공권력을 상대로 짜릿한 승리를 거두었지요. 아마 멕시코 국세청을 상대로 승리한 한국기업은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처음 이었을 겁니다. 지금도 저희는 회계담당 직원만 여덟 명을 두고 있습니다. 강동훈 경리부장 총괄 아래 공인회계사 한 명, 회계전문 직원 세 명, 일반직 세 명을 두고 있습니다. 회사규모로 보면 공인회계사 없이 3~4명이서 할 수도 있는 일이지요. 하지만 회계에서 만큼은 투명하게 가자는 저의 소신 때문에 규모가 커졌어요. 직원 봉급도 많이 나가고 세금도 많이 내야 하지만 앞으로 기업이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멕시코 시티로..

예정했던대로 점심 무렵 산루이스 델라파스의 인터젠 열병합 발전소 현장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낯익은 삼성로고를 새긴 안전모 차림의 삼성엔지니어링 직원들이 반갑게 우리를 반긴다. 1호차는 이미 도착을 해서 하역작업을 마친 상태였다. 대형 크레인이 2호차에 실린 배열회수보일러(HRSG)를 내리기 시작했다. 길고 험했던 여정의 마무리였다. 그날 저녁 3호차 역시 무탈하게 현장에 도착했다.120t이란 육중한 화물을 실은 트레일러 차량 세 대 모두 무서운 갱단이 출몰하는 타마울리파스 지역과 험준한 시에라 마드레 오리엔탈 산맥을 아무런 사고 없이 예정된 시간에 목적지에 안착을 한 것이었다. 홍 사장의 얼굴에 비로소 안도감이 어린다. 뭔가 일을 이뤄냈을 때의 뿌듯함으로 얼굴이 환해진다. 운송 작업을 시작한지 세 번 밤인 산루이스 델라파스에서의 잠자리는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다음날 아침 산루이스 델라파스에서 멕시코시티까지 돌아가는 250㎞의 여정은 상쾌한 드라이브였다.

 

‘장미의 거리’라는 이미지 그대로 멕시코시티의 소나 로사는 화려하고 번화했다. 깔끔한 호텔과 레스토랑, 비즈니스 빌딩, 상가, 기념품 점등이 혼재한 거리에는 인파로 넘쳐났다. 우리나라의 명동과 강남의 거리를 합쳐놓은 이미지였다. 판트란스 사무실은 소나로사의 론드레스 거리에 있는 4층 빌딩에 입주해있었다. 50여 명의 직원들이 600여㎡ 정도 되는 2층 전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왼쪽 벽에 붙어 있는 대형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판트란스의 전신인 코라멕스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항구에서 거대한 화물을 대형 크레인을 이용해 바지선에 옮겨 싣고 있는 장면이었다. 누군가의 안내도 기다릴 겸 찬찬히 사진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느 새 홍 사장이 옆으로 다가와 사진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해 하역작업을 마치면 너나 없이 모두 긴 한숨을 토해낸다. 무사히 도착, 하역했다는 안도감과 그동안 긴장의 연속에서 마침내 해방된다는 느낌은 운송에 참여한 모든 임직원이 한결같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서 백전노장의 경륜이 묻어난다.

“2006년 멕시코시티에서 동남쪽으로 800㎞ 정도 떨어진 미나티틀란 정유공장으로 발전기 리액터(교류와 직류가 겹친 회로에서 교류에만 반응하는 장치)를 운송하는 장면입니다. 미나티틀란 정유공장 건설을 수주했던 스페인 드라가도스 건설이 저희에게 무려 1263t짜리 리액터 운송작업을 맡긴 것이었어요. 멕시코 운송 역사상 단일 아이템으로는 가장 무거운 하중이에요. 운송장비 무게까지 합치면 1600t이나 됩니다.

 

당시 이 물건을 멕시코 동남부에 있는 코아사코알코스( Coatzacoalcos) 항구에서 30㎞ 떨어진 미나티틀란 정유 공장까지 옮기는 게 저희 회사의 임무였어요. 1600t 하중의 물건은 육로로 이동이 불가능합니다. 교량이 그만한 하중을 지탱하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바지선을 이용해 수로로 운송을 했어요. 5000톤급 바지선을 이용해 수로로 미나티틀란 정유공장까지 무사히 옮기는 데 성공을 했습니다. 운송방법을 연구하는 데만 1년 반이나 걸렸어요. 루트 현장 조사만 13번이나 나갔던 일입니다. 운송비용만도 120만 달러짜리였어요. 당시 멕시코 운송업계에서 크게 주목을 받은 일이었지요. 완벽하게 해내면서 저희의 실력을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굵직한 사업들을 잇달아 수주할 수 있었습니다.”

 

홍 사장이 사장실 옆 회의실로 안내를 했다. 창가에는 열대어 수족관이 놓여 있었고, 한쪽 벽에는 인증서와 표장장 등이 서른 개 쯤 붙어 있었다. 그 바쁜 와중에도 물고기는 홍 사장이 직접 키운다고 했다. 홍 사장과 차 한 잔을 나누려던 참에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와 꾸벅 인사를 한다.

▲ 멕시코에서 단일 아이템으로는 가장 무거운 1600톤 짜리 화물은 쳐다만 보아도 그 크기에 압도 당한다. 저 수 많은 바퀴가 무게를 지탱하느라 힘겨워 하는 모습이다. 이처럼 무거운 초대형 운송은 육로 이동이 불가능해 수로를 통한 바지선을 이용한다. Pantrans는 이 거대한 철 구조물을 무사히 목적지까지 운송함으로써 특수 운송업계에 일약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드라마틱 한 만큼 보람있는 운송사업
멕시코 한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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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사장 : “제 동생 홍승표 이사입니다. 제가 운송 사업을 시작하면서 이 친구를 불러들였어요. 스물아홉 살 때 멕시코로 건너와 22년째 저를 돕고 있습니다. 홍 이사가 회사 안살림을 잘 챙겨주는 덕에 제가 바깥으로 돌아다닐 수 있답니다.”

홍 이사 : “그나저나 정말 걱정을 많이 했어요. 이번에 사장님이 직접 다녀오신 산루이스 델라파스 인터젠 열병합 발전소 운송작업은 갱단들이 장악한 타마울리파스주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루트였어요. 더군다나 갱단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와중이었잖아요. 무사히 일을 마쳐서 다행입니다. 멕시코에서 운송 사업을 하려면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모두 일곱 번 갱단에게 화물을 털렸어요. 하나같이 휴대전화 수송차량이 대상이었습니다. 휴대전화는 움직이는 현찰이잖아요. 귀신처럼 정보를 알고 덮치더라고요. 우리가 갱단과 벌이는 숨바꼭질은 영화보다 훨씬 드라마틱하답니다. 2005년엔 8t 트럭 두 대 분량의 휴대전화를 멕시코시티에서 치와와로 움직이던 중 몽땅 강탈당한 적이 있습니다. 무려 120만 달러어치를 털렸어요. 우리 돈으로는 15억 원어치 정도 됐지요. 멕시코시티에서 치와와까지는 1740㎞ 거리입니다. 서북방 700㎞ 지점인 사카테카스 지방의 한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 갱단 15명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운전기사가 화장실을 간 틈을 이용해 작전을 개시했더라고요. 그때 경호 차량을 두 대나 붙였었어요. 각 차량에 38구경 권총을 휴대한 무장요원 2명씩 타고 있었지요. 그렇지만 무장요원 4명으로는 숫자로나 화력으로나 갱단을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경찰 출동하기 전 10분 만에 물건을 몽땅 자기들 트럭으로 옮겨 싣고 도주했어요.”

홍 사장 :갱단을 따돌리기 위해 첨단 장비를 계속 도입하고 있어요. 한 마디로 갱 조직과 지능싸움을 벌이고 있답니다. 처음엔 경호 차량을 한 대에서 두 대로 늘리고, 그 다음엔 장착된 지피에스(GPS, 위성위치확인시스템) 장치의 숫자를 늘립니다.원래 트럭 계기판 뒷면에 지피에스 장치가 고정으로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갱단이 그걸 알고 트럭을 탈취하자마

갑자기 차가 흔들리지도 않고 승차감이 확 좋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차창 밖을 내다보니 차는 어느새 반듯한 왕복 4차선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오가는 차량들도 부쩍 불어나 있었다. 시에라 마드레 오리엔탈 산맥을 완전히 벗어나 평지로 접어든 것이었다. 갱단 출몰 지역으로부터 멀찍이 벗어나 안전지대로 들어선 것이었다.도로변에는 꽤 번듯번듯한 상점과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이곳은 ‘벤투라’라는 도시입니다. 이제 목표지점인 산루이스델라파스까지는 150㎞ 정도 남았어요. 앞으로는 길도 평탄한 4차선 대로인데다 치안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지만 대형특수화물 차량은 안전지역이라 하더라도 야간통행은 금지돼 있어요. 이곳에서 하루 저녁을 묵어야 합니다.”

 

다음날 아침 6시 쯤 묵었던 호텔에서 2호차가 있는 주유소 주차장으로 출발하려 할 즈음 홍 사장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2호차 엔지니어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새벽에 차량 점검을 하던 중 2호차를 끄는 프라임 무버 중 한 대의 냉각수가 다 빠져 나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라디에이터에 균열이 생겼거나 냉각수를 공급하는 장치에 문제가 발생했는지 추가 점검을 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였다. 목적지를 코앞에 둔 지점에서 바짝 긴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었다. 홍 사장은 운전기사들끼리의 갈등으로 상대방 차에 고의로 고장을 내는 경우도 가끔 발생한다며 잔뜩 걱정스런 얼굴을 했다. 부랴부랴 현장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우려했던 큰 고장은 아니었다. 냉각수 호스에 작은 구멍이 생겨서 교체를 했다는 엔지니어의 설명이었다. 작은 해프닝으로 시작한 하루였지만 나머지 운행은 평온하기만 했다.

 

자 지피에스 장치를 제거해 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추가 조치로 경호업체에서 이동형 지피에스를 추가로 부착했습니다. 트럭의 어디에 장착하는 지는 경호업체만 알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마저 귀신처럼 찾아내더라고요. 그래서 7년 전부터 지피에스를 하나 더 늘려 세 개를 가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원래 트럭 차체에 달려서 나오는 지피에스와 경호업체에서 추가로 설치하는 이동형 지피에스에다가 원격 조정 지피에스를 하나 더 설치 한 겁니다. 트럭의 문은 회사에서 보내는 전자신호에 의해서만 문이 열리고 닫힙니다. 몇 해 전 40만 달러어치 휴대전화를 실은 트럭을 강탈 당 한 적이 있었어요. 경찰이 포위망 좁혀 트럭을 찾아냈는데 강도들이 문을 못 열고 그냥 도주했더라고요.”

홍 이사 :갱 조직들도 첨단 장비들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올 3월 초 50만 달러어치의 휴대전화를 싣고 가던 우리 운송 트럭이 공항 10㎞ 떨어진 고속도로 진입 지점에서 갑자기 통신 두절되는 사태가 발생했어요. 그날 저녁 7시30 분 쯤 트럭기사로부터 수상한 차가 쫓아오는 거 같다는 연락이 왔더라고요. 무장호송업체에 곧바로 연락을 했지요. 그런데 그 이후로는 트럭기사와 무장 경호요원과의 휴대전화도 안 되고 무전 교신도 되지를 않더라고요. 지피에스로도 트럭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2시경에서야 트럭을 찾았지만 문짝이 뜯기고 물건은 사라진 뒤였어요. 나중에 경찰 조사결과를 보니 갱단이 전파교란 장비를 동원했더라고요. 휴대전화와 지피에스 등 일체의 전자장비들이 먹통이 되고 만 거지요.”

홍 사장 : “갱 조직들이 물건을 터는 걸 보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합니다. 물건을 터는 시점에서 한 팀은 고속도로 톨게이트의 바리케이드를 들이받고 도주를 시작합니다. 경찰 병력을 따돌리면서 이목도 분산시키려는 술책이지요. 그걸 신호로 전자 교란 장치를 가동하고, 무장 경호 차량과 트럭을 제압하고, 그런 다음 지원팀이 들이닥쳐 물건을 가지고 튀는 거지요. 아주 치밀하고 일사분란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건을 수송할 때 우회하더라도 반드시 고속도로를 이용합니다. 시내도로를 이용하면 길이 복잡해 강도들의 도주로가 많기 때문이지요. 저희는 물건을 운송할 때나 경영을 할 때나 비록 조금 멀더라도 넓고 큰 길로만 간답니다. 정도로 가는 게 나중에 따져 보면 훨씬 빠르더라고요.”

 

기 원전 300년 쯤 20여 만 명의 인구가 살던 도시라는 테오티우아칸은 숱한 비밀을 간직한 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멕시코시티에서 북동쪽으로 52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테오티우아칸은 홍 사장의 고학 시절 여행사 가이드를 하면서 정규 코스로 들리던 장소였다. 높이 66m에 한 변의 길이만 230m로 전 세계 피라미드 중 3번째 크기라는 태양의 피라미드, 그리고 높이 46m에 한 변 길이 146m인 달의 피라미드가 나란히 서쪽 하늘로 넘어가는 태양을 배웅하고 있었다. 테오티우아칸 주민들은 이 거대한 구조물을 남겨 놓은 채 어디로 흔적 없이 사라졌을까. 2300여 년 전에 어떻게 저 높은 피라미드와 저 반듯하고 넓은 도로를 만들었을까.

 

문득 홍 사장도 먼 훗날 인류의 후손들이 궁금해 할지도 모르는 일을 지금 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앞으로 천년 혹은 이천년 후 미나티틀란 정유공장과 산루이스델라파스 인터젠 열병합 발전소 유적지를 방문한 후손들이 이렇게 물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무슨 기술로 1263t짜리 육중한 리액터를 옮길 수 있었을까.무슨 수단으로 120t짜리 배수회열보일러를 시에라 마드레 오리엔탈 산맥을 넘어 여기까지 옮겨 왔을까. 그 때 사람들은 다 어디로 바람처럼 사라졌을까.

멕시코 한인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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