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한국 언론 진흥재단지원 기획취재

취재: 멕시코 한인신문사

한국인과 멕시코인 국제결혼문화의 특징 및 생활전반 심층취재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재외동포언론에 지원한 지원금으로 진행한 기획취재물로 멕시코에서는 한인신문사가 선정되어 기사를 게재하는 것임을 밝혀둡니다.  

기획취재 안내

한국인의 멕시코 이민의 역사는 한 세기(110여년) 라는 적지 않은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는 다양한 모습으로 사회 각계각층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고 있다.


초기 이민이라고 하는 일명 ‘애니깽’ 한인들은 이민이라기보다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던 초근목피의 궁핍한 삶에서 “어디 가서 무엇을 하더라도 이보다 나을 것“ 이라는 한 가닥의 희망으로 조국을 떠난 것으로 지금의 이민이라는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이들은(애니깽 세대) 대부분 현지화 되면서 외모는 물론 언어 역시  완벽한 멕시코 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현재 4세대를 지나 5세대에 이를 만큼 많은 후손들이 각 지역에서 터전을 잡고 있다.

결국 멕시코에서 본격적인 이민은 1980년대부터 유학생을 중심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세대를 말하며 최근 멕시코 교민사회의 주류를 형성한 세대이기도 하다.
 대부분 멕시코시티 중심가와 지방 주요도시에 정착하고 있으며 자영업과 기업이 파견한 주재원으로 구분되고 있다.

한편으로 이민의 역사가 깊어지면서 한국인 자녀들이 현지인(멕시코인) 과 결혼하는 경우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즉 이민 1세대가 한국인 부모를 둔 경우라면 현지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은 젊은 층은 가부장적인 부모세대와는 다른 성향을 보이며  현지문화에 익숙해 그들(현지인)과의 교제가 일상으로 결혼 역시 낯설지 않아지면서 부모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어쩌면 결혼적령기의 남, 녀 가 자신에게 맞는 짝을 찾는 경우가 어려운 부분도 있어 자연스럽게 현지인 여성(남성)에게로 눈을 돌리는 경우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현지인과 결혼하는 이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결혼이라고 하는 것은 남과 남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면서 새로운 가족구성원이 탄생한다는 의미이지만 뭔가 다를 것 같고 신비(?)스럽기도 할 것 같은 국제결혼 역시 사실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성장한 환경이 다르다는 점과 교육수준, 부모에 대한 공경 등  한국문화와 현지인 문화가 충돌과 융화를 겹치면서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기도 한다는데 의미를 부여할 수가 있겠다.

 이번 기획취재를 하면서 느낀 점은 다문화 국제결혼 가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는데 그것은 대체적으로 한국인 남자가 현지 멕시코인 여성과 결혼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으며 한국인 여성이 멕시코인 남성과 결혼하는 경우는 아직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결혼에 실패한 한국남자가 현지인 여성과 결혼하는 경우,  대체적으로 나이가 어린 여성과 재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한국여성이 현지인 남자와 결혼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한국여성들의 교육수준이 높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인 남자는 자신의 사업장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여직원을 만나 결혼으로 성사되는 경우가 많고 한국여성은 자신이 다니던 직장에서 현지인 남자와 만나 결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공통점은 국제결혼이 생각보다 약 80%에 이를 정도로 실패(이혼)가 훨씬 많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한국 남자의 경우 나이차이로 오는(가부장적 자세) 세대 간의 대화문제가, 한국여자의 경우 현지인 남자들의 질투심으로 인한 끊임없이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점과 남자의 지나친 외도가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이다.

결국 국제결혼은 신중하게 접근해야하며 충분한 교유를 통해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심, 상대 문화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재고해야할 중대차한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국제결혼 30년차라는 어느 지인이 한 말이 새삼스럽게 와 닿는다.
“양보와 상대에 대한 존중을 하지 못했다면 아마 10번은 이혼했을 것” 이라면서 “문화차이로 인한 다툼은 생각보다 심각해 첫째도, 둘째도 인내와 배려를 해야만 원만한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가 있다” 고 강조한 부분이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대도시 몇 곳을 방문, 국제결혼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취재지역 및 순서)

1. Guadalajara   가명: 윤서희

2. Puebla            가명: 김철진

3. Monterrey      가명: 최일순

1. 첫 번째 이야기 / Guadalajara 윤서희

의류회사의 관리자로 근무 중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현지인 남성을 만나 결혼한 경우다.

1998년 한국에서 근무하던 회사가 멕시코에 공장을 세우면서 기술직으로 멕시코 땅을 밟게 되는 윤서희씨는 생산 관리책임자였다. 이때가 26세로 당시로서는 결혼 적령기에 가까운 아가씨였다.

 

독신으로 타국에서의 생활은 늘 외로움을 동반했으며 자신에게 관심과 친절을 베풀면서 호감을 표시하던 같은 회사 현지인 남성을 알게 되면서 사귀게 된다.

 

8개월 정도의 교제를 이어가다가 “현지인과의 교제를 할 경우 퇴사를 해야 한다” 는 회사 방침이 있어 남의 눈을 피해 몰래 데이트를 했지만 회사 측에서 알게 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회사 측에서는 현지인과의 사귀는 것에 모두 반대를 했고 둘 중 하나만 근무할 수 있다며 관리자로 있던 자신이 계속 근무하기를 원했지만 결국 둘이 동시에 그만두면서 회사를 떠난 것이다.

 

멕시코에 온지 불과 8개월 만에 연하의 남자(당시 윤서희씨는 27세, 멕시코인 남성은 22세였다) 를 만나게 되면서 스페인어는 전혀 할 줄을 몰랐고 사전을 들고 모르는 단어를 짚어가면서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벌어 놓은 돈이 있어 2개월가량은 둘이 놀면서 지내다가 결혼을 결심하고 98년 연말에 사귀던 남자와 동행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그러나 걱정 반, 근심 반과는 달리 처음 맞이한 멕시코 인에 대해 의외로 집안 식구들이 환영하는 것에 크게 고무됐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 는 속담처럼 “말이 나온 김에 결혼식을 올리라” 고 해서 얼떨결에 결혼식까지 일사천리로 치르면서 정식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멕시코에 온지 8개월 만에 멕시코인 남자를 만나 곧바로 한국으로 가 결혼식을 올렸으니 불과 1년 사이에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윤서희씨 인생의 큰 전환점이 있었던 것이다.

 

외롭던 자신에게 너무 친절하고 많이 도와주는 멕시코인 남성이 그동안 보아온 무뚝뚝한 한국인 남자들에 비해 새로운 모습으로 느껴지면서 더 쉽게 마음을 문을 열었다는 그녀는 멕시코로 돌아와 다시 한국계 회사에 다니면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1시간 정도의 거리에 버스통근으로 1년 정도 근무하는 도중에 임신을 하면서 출산일이 가까워올 무렵에 너무 힘들어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가사를 돌보면서 첫 딸을 출산했다.

 

그사이 남편은 옷가게를 열었지만 여의치 않아 문을 닫았고 사업실패 후 남편은 멕시코 회사에 취직을 했다.

 

당시 기술이 뛰어났던 윤서희씨는 한국계 회사에서 월 3천불을 받을 만큼 대우가 좋았지만 출산으로 직장생활이 어려웠다.

 

반면, 멕시코 회사에서 직장 생활하는 멕시코인 남편은 월 1만 페소라는, 생산직으로서는 적지 않은 월급을 받아왔지만 그 돈으로는 생활비조차 안 되는 금액이었다.

 

결국 2003년에 남편을 월급 많이 주는 한국으로 데려가 직장생활을 하게 했다. 멕시코인 남편은 이때부터 12년 동안 한국생활을 하면서 받은 월급(연봉 3천8백만 원)으로 7년을 한국에서 같이 살다가 “자녀는 멕시코에서 교육을 시켜야 한다” 는 남편 말에 윤서희씨는 2008년에 출산한 둘째딸을 포함, 딸 둘을 데리고 2010년 멕시코로 혼자 돌아왔다.

 

이후로도 남편은 5년간을 한국회사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월급을 멕시코로 송금했고 이 돈으로 생활하다가 2015년에 남편마저 멕시코로 완전히 돌아오게 되면서 가족이 합치게 됐다.

 

멕시코인 남편은 돈도 좋지만 가족과 떨어져 산다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멕시코로 돌아온 후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에 큰 위안을 삼고 있는, 아주 가정적인 사람으로 윤서희씨는 평가한다.

 

그러나 멕시코로 돌아온 남편의 수입이 변변치 않아 생활은 힘들어져 갔고 결국 윤서희씨는 게스트 하우스를 하면서 생활전선에 다시 뛰어들게 됐다.

아이 둘을 사립학교에 보내는 등 한국에서 받던 월급을 기준으로 생활이 맞추어져 있어 수입이 줄어들자 학비조차 내기가 버거웠던 것이다.

틈틈이 김치도 만들어 팔고 유학생을 상대로 김밥도 만들어 팔기도 했으며 심지어 공장에서 나오는 옷 실밥을  따면서 생활비를 벌기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형편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찰나에 지방 대도시에 한국기업이 들어서면서 한국회사에 다시 들어가게 된 윤서희씨는 자신이 벌어오는 수입으로 생활을 하고  남편은 집에서 아이들 뒷바라지와 살림을 맡아서 하는 역할분담에 합의하게 된다.

 

평범한 멕시코인 남편이 받는 월급이란 윤서희씨가 받는 월급의 삼분의 일도 안 되는 수준이어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내심 불만이 가득하다.

 

이런 생활도 시간이 지나자 멕시코인 남편이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빨래와 식사 준비 등 가사에 충실하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은 마음이 편해 졌단다.

 

역할분담으로 자신이 일하고 남편이 집에서 가사를 맡는 것에 불만은 없지만 “저축을 전혀 할 수 가 없다“는 점이 가장 견디기 어렵다고 하소연 한다. 즉 자신의 수입으로는 생활비도 빠듯해 전혀 저축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결혼을 후회하지 않느냐?” 는 질문에 “사귀면서 또는 살면서 좋은 점이 더 많아서 단점이 묻힌 경우라면서 우회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나타냈다.

윤서희씨 그녀가 꼽은 남편의 장점이다.

일단 멕시코인 남자는 너무 친절하단다. 무거운 짐을 절대로 들지 못하게 하고 사사로운 것에도  배려심이 많고 아이들을 돌보는 것에 지극정성이라는 것이다.

 

반면, 윤서희씨에 대한 상대적 열등감으로 스스로 위축되면서 지나친 집착과 질투로 인해 생활이 너무 숨 막힐 듯이 답답하다는 것을 단점으로 내세웠다.

 

“왜 남편이 집착하는 것 같으냐?” 는 질문에 “자신이 외국인(한국인) 이라 언젠가는 떠날 것 같아 불안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면서

“한국인들과의 교제를 절대 반대하고 오직 자신의 가족위주로만 생활 할 것을 요구한다” 는 것이다.

 

정서적인, 문화적인 차이지만 한국에서 생활할 때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 모임에 여자 친구가 어깨를 툭 치면서 반갑다는 인사말에 “왜 내 아내 어깨를 치느냐? 며 불같이 화를 내면서 혼자 뛰쳐나가버리거나 심지어 남동생이 집으로 찾아오면서 누나한테 전화로 ”밥 좀 차려 놓으라“ 는 말을 듣고 남동생에게 ”왜 내 아내한테 밥상 차리라고 명령하느냐?” 고 화를 내면서 “앞으로 그럴 거면 집으로 찾아오지 말라” 는 말에 동생과도 사이가 멀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 친구를 만나는 것에 대한 질투와 집착이 지나쳐 교회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거나 자신이 남들과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해 평소에는 맘에 두고 있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이를 문제 삼을 때가 너무 힘들다” 고 그녀는 하소연 했다.

 

떨어져서 직장생활을 하는 자신을 못 믿어 SNS로 수시로 확인을 하는가 하며 최근에는 이마저 못 믿어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라고 요구하고 있어 몇 번 크게 싸운 적이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시댁식구들과의 관계는 어떤가?‘ 에 대한 질문에 ”시어머니가 남편과 비슷한 성격이라 힘들지만 시아버지는 자신을 너무 예뻐하면서 많이 챙겨주고 위로해주신 분이었는데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 고 애석해 했다.

가족들과의 대화는 대부분 스페인어로 하지만 큰딸은 2살부터 9살까지 한국에서 자라 한국말이 유창해 유일하게 큰딸과는 한국말로 소통한단다.

앞으로 계획을 묻자, 조금이라도 여유가 된다면 내일(식당)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면서 이때만큼 그녀는 환하게 웃는다.

 

반면 “앞으로도 남편이 지나친 집착으로 힘들게 한다면 이혼을 생각 중” 이라고 밝힌 그녀는 “지금은 대화로 문제를 풀기보다는 남편이 싫어하는 것을 안 하게 됐다“ 면서 “내면적인 응어리가 풀어지지 않아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여성이 외국인 남성과 결혼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다.

“뚜렷한 직업이 있으면서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는 남자라면 찬성 한다“ 는  윤서희씨는 ”외국인과의 결혼, 특히 멕시코인과의 결혼은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지만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올해로 그녀는 18년째에 멕시코에서 생활하고 있다.

“열심히 돈 벌어 내 사업을 해보겠다는 의욕이 있어 지금의 일이 힘은 들지만 재미도 있다” 면서 인터뷰 내내 숨김없는 결혼생활을 설명하는,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월급 받는 입장이라 바쁜 틈에 어렵게 시간을 냈다”는 윤서희씨는 휴일임에도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 면서 장시간의 인터뷰로 시간을 빼앗긴 듯 우리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라도 자신의 일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에 염려를 하면서 재차 확인을 요구하기에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는 확답에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뒷모습을 보이며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2. 두 번째 이야기 / Puebla 김 철진씨

손위처남이 멕시코에서 유학을 하고 있어서 처남의 권유로 멕시코로 이민 오게 됐지만 해외여행 경험이 많아 멕시코로 오는데 2주 만에 결정할 정도로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는 김철진씨는 올해로 20년이 다 되어가는 고참 이민세대다.

 

가족을 모두 데리고 멕시코로 이민을 왔지만 3년 만에 이혼의 아픔을 겪게 되면서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한국에서 자동차 부품업에 종사하다가 멕시코로 이주한 후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이 같은 한국인에게 두 번이나 사기를 당하고 나니 몸과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고 한동안 우울한 나날 속에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단다.

 다시 마음을 다 잡고 경쟁이 치열했던 대도시에서 지방 중소도시로 거처를 옮기면서 그곳에서 시작한 의류사업이 번창하면서 비로소 생활의 안정을 되찾게 된다. 이때 만난 현지인(멕시코인) 여성이 지금의 아내로 결혼생활 8년째에 접어든다.

 

그러나 자리 잡고 안정된 생활을 하던 지방 중소도시에서의 의류사업은 2번에 걸친 현지인의 절도로 큰 피해를 보게 된다.

 

값나가는 가게물건을 통째로 실어가 버리는 현지인에 대한 감정과 조직범죄가 활개를 치면서 밤만 되면 문밖 나가기가 어려운 치안상황에 또 다시 모든 걸 접고 대도시로 나와 지금은 중견회사에서 자신의 전공을 살려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다.

멕시코 한인신문
멕시코 한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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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혼으로 맞이한 현지 여성은 나이차이가 상당히 많이 나면서 (결혼당시 김진철씨는 47세, 현지 여성은 20세)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대학생이던 지금의 아내가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지방도시에서 한국인이 드물었던 자신을 찾아오게 됐고 이 과정에서 사랑이 싹터 결혼까지 골인하게 됐다.

 

막상 결혼을 결심했지만 나이가 적지 않은 자신이 나이 들어 경제적, 성적 능력이 떨어지면 버림받을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염려와 처가 쪽의 반대가 심해 결혼은 쉽지가 않았다.

 

특히 장모가 자신보다 5살이나 아래고 장인은 6살이나 더 적어서 반대가 극심했다고 한다. 장모의 반대 속에 “일단 살아보고 정 안되면 헤어지자” 며 동거가 시작되고 동거생활을 하면서 자주 장인, 장모를 찾아가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돼 지금은 “절대 헤어지지 말고 잘 살라“ 고 적극적으로 후원해주고 있어 마음이 편하단다.

아직은 학생들이지만 처남들도 이제는 진로에 대해 상의를 해오고 있으며, 어쩌면 자식 같은 느낌도 들어 더욱 애정이 간다고 한다.

 

2남3녀 중 둘째인 부인은 식구들의 반대가 심하자 “내 인생은 식구들과는 별개의 문제” 라며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결혼을 받아준 것에 항상 고마움과 미안함을 가지고 있단다.

나중에 안 사실로 처가 식구들은 외모 상으로는 전혀 흔적이 없지만 외할아버지가 일본인 2세여서 동양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 일본과 한국 드라마에 심취해 있어 같은 동양인인 자신에게 더 호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최진철씨는 풀이했다.

 

이미 가정을 가져본 경험이 있고 성장한 자녀를 두고 있는 김진철씨는 새롭게 시작한 현지인 여성과의 결혼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

특히 멕시코 인들은 “가장이 가정을 꾸려나가야 한다” 는 의미가 없어 한국적 스타일의 가정을 지켜나가는 자신의 모습에 처가 쪽에서 크게 호의를 느끼고 있단다.

 

일체의 처갓집 지원을 받지도 않지만 도와주지도 않는 문화에 적응되면서 오히려 한국식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부담이 훨씬 적어 좋다는 것이다. 나이차이로 인한 문제도 전혀 없다.

 

한국여성과 이혼을 겪으면서 한동안 방황했던 그에게 멕시코인 여성과의 결혼은 김진철씨에게 아픈 상처를 위로받는 계기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김진철씨는 국제결혼, 특히 멕시코인과의 결혼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까?

“멕시코에 살면서 멕시코인 여성과 결혼은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대부분 한국인들은 멕시코 인을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어 속상할 때가 많다” 고 했다.

현재 부인이 한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는 고급인력이지만 “한국인과 살아도 너희는 멕시코인” 이라는 노골적인 차별에 심한 모멸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특히 “업무성과에 따른 성과급제도가 있지만 멕시코인은 예외고 승진도 시키지 않아 속상하다” 고 토로했다.

 

많은 한국인들이 작업장이나 현장에서 만난 현지인 여성과 결혼을 하면서 생긴 이미지로 인한 결과이지만 김진철씨는 멕시코인의 교육환경이 열악하고 교육기회가 부족한 부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멕시코인과 결혼한 한국인도 멕시코인 대우를 받는다” 는 것이다. 이처럼 노골적인 차별대우에 김진철씨는 한국인들의 모임에는 일체 나가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동남아 노동자들을 무시해 논란이 일고 있지만 이곳 멕시코에서도 그 버릇 못 고치고 멕시코 인을 무시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즉 “한국은 우리 국가이지만 여기서는 이방인 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면서 현지인들의 차별대우에 대한 한국인들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스페인어가 많이 부족한 김진철씨에게 부부간 대화의 한계는 못 느끼는가? 물어보았다.

“자잘한 표현은 힘들지만 설명을 통해 웬만한 내용을 서로가 다 통 한다” 면서 최근 부인과 함께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 집안 식구들을 만나보고는 “한국에서 살고 싶다“ 고 말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부인에 대한 자랑이 대단하다.

 

멕시코인 여성과의 결혼에 대한 장점을 묻자 “한국여자는 경제문제를 크게 중요시하지만 멕시코인 여성은 ‘힘들면 쉬어라‘는 입장으로 ”너무 돈에 집착하지 말라“는 인식이 강한 점을 꼽았다.

즉 가정이 중요하지 돈이 우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은 바쁘면 휴일근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화이지만 이곳 멕시코는 “일요일만큼은 가족과 지내야 한다” 는 인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멕시코식(?) 가정에 충실하고 있다고 한다.

단점으로는 저축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조금만 여유 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쉬면서 일하자“ 라는 개념이라고 한다.

 

멕시코 부인이 나이 많은 한국남자와 결혼한 것에 대한 현지 멕시코 인들의 시각이 불편하지 않느냐? 는 질문에 “그런 점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면서 “둘이가 서로 좋아하면 그것으로 모든 게 해결된다”는 멕시코식 해법을 내놓았다.

 

현재 자녀가 없어 조만간 한국에 가서 정관복원수술을 할 예정이라는 김진철씨는 2세에 대한 부인의 요구가 드세다고 한다.

 

주변의 국제결혼을 한 한국인들과 정례적인 모임을 통해 우의를 다지고 있다는 그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 교육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다.

대부분 멕시코인 엄마는 한국식으로 교육을 시키고 싶어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교육이 어렵다고 하소연 한다.

또한 한국인 남편을 둔 멕시코인 여성은 한국에서 거주하지 않으면 한국국적 취득이 불가능해 이 부분 또한 자녀들의 한국교육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멕시코인과 국제 결혼하는 한국인들에 대한 충고도 그는 빼놓지 않았다. “한국남자들이 너무 일에 치중하면 멕시코인 여자들이 싫어한다.” 면서 “일은 일터에서, 집에 들어오면 철저하게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고 충고했다.

가정을 등한시하고 일을 우선으로 하는 한국인들의 성향으로 인해 가정불화가 생기고 있으며 실제 주변의 많은 국제결혼 가정에서 일어나는 부부싸움 대부분이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몸이 불편한데도 일이 있어 직장을 나가는 경우 멕시코인 부인들이 이해를 못한다는 것이다. 또는 몸은 집에서 쉬지만 정신적으로 일을 놓지 못하는 경우도 결코 쉬는 것이 아니어서 불만을 나타낸다고 한다.

한편으로 한국여자와 결혼한 멕시코인 남자의 경우 한국여자가 요구하는 남편의 역할강조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으며 “남자가 일해서 벌어먹여 살려야 한다”는 인식에 역시 강한 불만을 나타내므로 “이런 점에 유의해야만 가정불화가 생기지 않는다” 고 조언했다.

 

즉 여가문화가 부족한 한국인들은 너무 경제적인 문제에 치중한다는 점을 이들은 가장 불만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멕시코에서 정착할 계획이라는 김진철씨는 앞으로 “고아와 노인들을 위한 자급자족이 가능한 공동체 설립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면서 이를 위해 “장인, 장모와도 긴밀하게 상의하면서 준비 중에 있다” 고 귀띔했다.

 

다문화 가정(한국인과 국제결혼)의 이혼이유로는 “한국인 남자는 권위를 너무 앞세운다” 는 점과 경제능력을 우선시하는 시각, 멕시코인 여자는 가정을 중요시하는 점에서 의견대립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하면서 일부 한국인들이 현지 여성을 즐기는 만남으로 변질시키면서 많은 물의를 빚고 있지만 지금은 멕시코인과의 결혼이 점차 정착단계로 접어든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한국인 남성들이 멕시코인 여성과 결혼하면서 지나치게 ‘한국화‘ 하려는데 이를 거부하면서 생기는 충돌도 적지 않다” 면서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문화의식을 가져야만 원만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 고 조언했다.

 

가장 궁금했던 수입은 누가 관리하는지? 에 대한 질문에 역시 예상대로 수입은 별도로 관리하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주요 지출은 김진철씨가 처리하고 있었다. (멕시코인 대부분은 부부가 수입을 별도로 관리한다.)

 

멕시코 인들의 이혼율이 높은 이유를 물어보았다.

 

이에 김진철씨는 “파티문화가 많은 멕시코는 성격차이보다는 불륜으로 인한 이혼이 많다” 면서 특히 “먹고 즐기는 문화가 발달하다보니 여기에서 생기는 문제가 적지 않다“ 면서 ”부부가 서로 믿지를 못하니 항상 감시와 통제를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고 분석했다.

지금은 “자신이 멕시코 문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면서 ”멕시코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로 멕시코인과 결혼하면 안된다“ 고 강조했다.

김치를 담그는 법, 김치찌개 요리를 부인에게도 가르쳐 휴일에는 함께 한국음식을 요리해서 먹는 등 “즐겁게 살고 있다” 는 김진철씨는 함께 참석하지 못한 부인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내자 “선약이 있어 참석할 수가 없었다” 며 양해를 구했다.

 

이야기는 길어졌다. 애초 짧은 만남으로 설명했지만 그도, 우리도 할 말이 많아 묻고 답하는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늦어지면서 계속해서 걸려오는 부인의 안부전화에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시티행 비행기 출발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필요한 내용이 있으면 또 만납시다” 는 약속을 남기고 미리 연락해 놓은 택시를 타고 급히 공항으로 향하면서 이날 일정은 모두 마무리 됐다.

3. 세 번째 이야기 / Monterrey 최일순씨

 

최일순씨는 27세에 결혼하고 남편 따라 외국으로 나온 후 44년째 이민생활을 하고 있는 최고참 이민세대다. 남편이 외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한, 당시로서는 엘리트 지식층으로 “앞으로 스페인어가 유용한 시대가 올 것” 이라는 주변인들의 권유로 중남미로 이민을 온 특이한 경우다.브라질-아르헨티나-온두라스를 거쳐 멕시코까지 중남미 국가를 두루 섭렵(?) 하면서 “이제는 외국인이 다 됐다” 며 웃는다.

이민 초기에 자동차 부품업을 하면서 적지 않은 부를 축적했지만 거주하던 국가의 불안정한 정세로 인해 피해를 많이 보고 1990년 멕시코로 재 이민을 오게 됐다.

 

멕시코로 올 때는 거의 빈털터리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남모를 고생도 했지만 지금은 제조업으로 자리를 잡아 “먹고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고 말하며 지난날의 고생도 추억으로 회상하는 여유가 느껴진다.

멕시코 한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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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딸, 멕시코인 사위와 손자 등 3대가 함께 사는 이들의 가정을 방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집을 들어서면서 일반 한국인 가정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낯설어하는 우리 일행에게 “오랫동안 이렇게 살다보니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장성한 자녀들이 모두 국제결혼을 하면서 사위나 며느리와 대화가 원활하지 못해 외로울 때도 있지만 “사돈 신경 쓸 일이 전혀 없고 한국 사람과 사는 것에 비해 편하다”면서 최일순씨는 웃는다.

 

마주앉은 멕시코인 사위에게 “한국인과 결혼했는데 어떤 점이 좋은가?” 고 물어보았다.

“16년째 결혼생활 했는데 동양인(한국인)이 더 침착하다. 또 남편에 대한 존중을 할 줄 알고 문제가 있을 때 아내가 많이 인내하는 편이다. 솔직하고 상냥해 우리 가족들도 모두 좋아하고 있다. 동양인에 대한 호감이 많아졌다.” 는 화답이 돌아왔다.

 

반면 “고집이 세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점”을 불만으로 꼽았지만 “다시 태어나도 외국여성과 결혼하겠느냐?” 는 질문에는 “일반적으로 멕시코인 여성들은 친정 가족만 생각하고 시댁식구와는 교류가 거의 없는 편인데 그런 면에서 동양인과의 결혼은 괜찮은 것 같다” 고 에둘러 대답했다.

특히 “대부분 멕시코인 남자는 부인에게 돈을 잘 안주지만 자신은 수입의 20%를 제외하고는 모두 부인에게 준다” 고 설명하는 그는 아마 한국인 부인한테서 단단히 교육을 받았나 보다.

 

부모 모두가 한국인으로 외국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은 한국인 부인은 외모만큼은 전형적인 한국여성의 모습이었지만 정서는 분명 다르게 느껴져 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자신은 한국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한국정서는 잘 모르겠다” 면서 “과거 한국회사에서 근무도 해 보았지만 사고방식이 많이 달라서 한국인과의 결혼은 어려울 것 같다” 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미 자신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자란 오랜 외국생활로) 현지화 되면서 한국에는 관심이 없다‘ 면서 ”축구를 하면 남편 국가인 멕시코를 응원한다“ 고 스스럼없이 의견을 나타냈다.

 

“멕시코인 남편과 살면서 좋고 나쁜 점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한국 사람과 사는 것에 비해 편한 것 같다.” “밥하기 싫을 때 안 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고 말하며 마주 않은 남편을 바라보고 배시시 웃는다.

반면, “자신을 항상 감시하는 느낌을 받아 불편하다“고 말하자 멕시코인 남편은 ”그런 적 없다“ 고 펄쩍뛰며 해명했다.

 

그러나 부인이 조목조목 지난 일을 예로 들어가며 설명하자 표정에서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 우리가 화제를 바꾸었다.

 

옆에 있던 최순실씨는 “경제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도 있었고 주위환경과 언어문제 등으로 아이들에게 한국정서를 심는 게 어려웠다” 면서 “실제 한국은 한 번 밖에 다녀오지 않았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형제들과도 교류가 뜸해져 지금은 거의 잊고 산다” 고 저간의 사정을 설명해주었다.

“출가한 자녀들과의 관계는 어떤가?” 라는 질문에 “엄마 품에 있을 때만 자식이지 한국의 ‘孝’ 라는 정서가 전혀 없어 어른(부모) 이라고 존경하지 않는다” 면서 “사위도 그렇고 손녀들도 함부로 이름을 막 부르고 마치 친구처럼 대할 때는 어색할 때가 많다” 고 설명했다.

올해 70세인 최순실씨는 한국에서 결혼하자마자 이민을 나온 경우로 비록 40년 이상을 외국생활을 했지만 아직도 한국인들의 정서가 강하게 남아있어 어른에 대한 존중과 예의범절에 대한 의미를 잘 알고 있지만 자식들에게 그런 기대를 접은 지가 오래 된 듯 여겨졌다.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말이 “말이 안통해서  밥 먹을 때나 가족모임이 있을 때 소외감을 느끼는 점” 과 이로 인해 손자들과 거리감이 생기고 출가한 자녀들과도 사위입장을 대변하는 모습에 “서먹함을 많이 느낀다” 고 딸과 사위가 들으라는 듯 솔직하게 대답했다.

 

외모는 한국인 모습이 전혀 없는 손자, 손녀들에게 “학교로 찾아오는 한국인 할머니에 대해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지 않느냐?” 고 물어보니 “놀리지는 않고 오히려 흥미롭게 생각한다” 면서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한국에 있는 외가 쪽을 알고 싶다” 는 등 관심을 나타냈다.

몇 시간에 걸친 인터뷰는 자리를 들썩들썩 하는 사위의 모습을 보고 너무 지체됐다는 생각에 곧 바로 마무리를 했다.

 

시간이 늦어 저녁을 먹을 수도 없었지만 “저녁 먹고 가라” 는 말이 없는 것을 보고 “아!, 여기는 멕시코지?‘ 깨닫고는 “기회 되면 또 한 번 찾아오겠다.” 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서둘러 시티로 향했다.

이미 해가 저문지는 한참이나 지나 휴일을 즐기고 귀경하는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도로는 가거니 서거니를 반복하면서 끝이 보이지를 않았다.

 가끔씩 폭우까지 쏟아지면서 칠흑 같은 어둠속에 뱀 꼬리가 휘어있는 것 같은 산악 도로를 비춘 차량들의 전조등 불빛을 안내삼아 몇 시간을 도로에서 허비하고 나서야 밤늦게 시티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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